조동성 <서울대 교수/현 미 듀크대 초빙교수>

요즈음 미국경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좋다"(too good to be true)고
한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선진국중 제일 높은 3.7%였고 물가와 실업률은
각각 2.4%와 4.7%로 73년 석유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7년째 호황이 계속되고 있고,주가는 3년 사이에 두배로 뛰었다.

국가경쟁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세계 2백6개국 56억 인구의 5%도 채 안되는 2억6천만명이 세계
총생산의 26%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만 해도 욱일승천의 기세로 세계시장을 주도하던 일본에 눌린
채 미국경제는 밑바닥을 모를 정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자동차산업의 메카인 디트로이트는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사의 잇단
공장 폐쇄로 유령도시가 되다시피 했고 미국내 마지막 TV제조공장을
운영하던 지너스사도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던 미국경제가 불과 10년 사이에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나 일본을
완전히 따돌리고 세계를 주도하는 경쟁력을 갖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는 자본주의 원리에 입각한 자유로운 경쟁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누구든 일한만큼 수확을 거둘수 있다.

남다른 아이디어를 갖고 진취적인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여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사업가로 크게 성공할수도 있다.

둘째는 탄탄한 사회간접자본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반도체 정보통신 등 과학기술 기반위에서 미국 기업들은
신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생산한다.

대학교육도 세계 어느나라보다 잘 갖추어져 있어 고도로 훈련되고
첨단기술을 습득한 전문경영자와 기술자들을 끊임없이 배출하고 있다.

세번째 원인은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찾을수 있다.

미국 정부는 1970년대에 잘못된 거시경제정책을 추진했다.

큰 정부, 즉 복지증진과 실업해소를 위한 인위적인 지원정책을 쓴
것이다.

그 결과 세입보다 지출이 많아졌고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이와 함께 높은 물가상승, 투자자본부족, 금리상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르러 정부가 거시경제정책을 바로잡고 일본을 비롯한
해외로부터의 투자자금이 유입되면서 미국 경제는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작은 정부, 즉 균형예산과 엄격한 통화관리로 물가가 안정되고
경제성장률이 회복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미시경제 차원에서 일어난 변화다.

특히 근본적인 변화는 기업지배구조에서 일어났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기업의 전문경영자들은 어느 누구의 통제도
없는 가운데 소위 "경영자 천국"을 구가했다.

그 결과 기업은 투하자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경영자의 개인적
욕구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80년대부터 자본시장과 소액주주들은 이러한 기업경영의 문제점을 깨닫고
전문경영자에 대한 감시기능을 강화했다.

이사회에서는 사외이사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여 사장을 비롯한 내부
경영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감독하기 시작하였다.

경영자에 대한 보상 역시 정액연봉을 최소한으로 낮추는 대신 주식 옵션에
비중을 두어 이들이 경영성과를 높이는데 노력을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미국 경영자들은 생산성을 증대하기 시작했다.

품질을 개선하고 불량률을 줄이는 전사적 품질경영, 효율성이 낮은
근로자를 해고하고 조직을 슬림화하는 다운사이징 등이 도입되었다.

이로써 1979~95년 사이에 총 노동인구의 31%에 해당하는 4천3백만명이
직장을 잃었으나 그 결과 미국기업의 생산성은 일본 수준을 넘어 세계제일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에서 해고당한 근로자들은 창업을 시작했다.

한 기업의 감원에서 수십, 수백개의 신규기업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 경제는 대기업으로부터 창업기업 벤처기업 중소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갔다.

10년 전만해도 우리는 미국경제와 한국경제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떤 경제정책이 미국에서 효과를 나타냈다고 해서 이를 한국경제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기업은 세계시장에서는 물론 한국시장에서도 미국기업과 1대1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기업의 생산성 수준에 미달한 한국기업이 버틸수 있는 시장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수 없다.

더구나 IMF긴급융자에 의존하고 있는 오늘의 총체적 경제난국은 우리에게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미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공평하면서도 자유로운 시장을 만들고 과학기술로 탄탄한 기반을 갖추며
정부를 작게 해야 한다.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확립하여 대주주나 경영자개인을 위한 기업이
아니라 모든 주주를 위한 기업,생산성을 갖춘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인력시장에 유연성을 도입하여 창업의 열기가 온 나라를 휘덮는 신나는
기업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