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한국특수선(주) 회장>

IMF시대에 모라토리움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지불불능사태라는 것은 아는데 이것이 곧 국가가 정리해고 당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기업이 망하면 부도 났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기업이 정리해고를 당하는 것이다.

무능한 국가가 정리해고 당하고 잘못된 기업이 정리해고 당하는 마당에
사람이 정리해고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인정머리 없는 말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기업이 망하면
1백명이 몽땅 실업자가 되는데 정리해고를 하면 30명만 실업자가 되고
70명은 구제된다.

그후 기업이 잘 되어 커지면 60명을 다시 고용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는 뻔하다.

그런데 노동계는 왜 반대하는가.

노동계의 명분은 정리해고제를 법제화하면 실업자가 갑자기 늘고 정부와
기업이 잘못한 일을 노동자가 뒤집어 써야 하느냐고 항변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노동계 책임은 없다는 말인가.

89년부터 근 8년간 임금을 생산성이상으로 올리고 그 많은 파업은 누가
주도하였다는 것인가.

일본의 자동차공장을 견학한 노조간부들이 "일본의 근로자들은 노예와
같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일 할수 없다"고 하고 현장의 TQC분임조를 역이용하여
노조 조직강화로 활용한 장본인들은 오늘의 이 시국에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

무능한 정부, 무책임한 정치가 욕심많은 기업인, 투쟁적 노조지도자들의
잘못이 오늘날 이 지경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의 잘못은 재쳐두고 마치 자기들만이 근로자를 위하는 것인
양 말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이 맞는다고 한다면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미국은
실업률이 엄청나야 하는데 실업률은 줄고 있다.

근로자 파견법도 마찬가지다.

파견법을 만들면 정규직근로자는 줄고 파견업체가 임금을 착취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업은 적재적소에 그에 알맞는 노동력과 그에 상응한 임금이
책정되어야 존립한다.

청소만 하는 사람에게 입사경력이 오래되었다고 하여 과장급 월급을 주면
기업은 오래갈 수 없다.

반대로 고급기술자에게 젊고 입사경력이 짧다고 하여 평사원임금을 주면
그런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여 기술개발이 안된다.

기업의 성패는 인력의 활용에 달려있다.

지금의 년공서열식 임금체계로는 제대로 인력을 활용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조합은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고집한다.

이러한 주장은 무능한 근로자를 보호하고 유능한 근로자는 기업에서
떠나게 하는 제도이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근로자 파견제다.

그러므로 노조가 능력주의에 입각한 임금제를 받아들이든지, 파견제를
허용하든지 둘 중에 하나는 터주어야 한다.

그런데 둘다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노동시장을 자율화하여 적소적재의 인재활용이 가능하여야
고용도 늘고 기업도 발전한다.

그렇지 않으면 둘다 죽는다.

그러므로 정리해고와 마찬가지로 근로자 파견법은 궁극적으로 고용을
늘리는 제도이지 줄이는 제도가 아닌 것이다.

이런 정도는 노동조합지도자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반대하는 것일까?

명분과 실리는 따로 있게 마련이다.

정리해고나 파견제가 실시되면 정규직근로자가 준다.

그러면 노동조합원이 줄고 조합비가 줄며 조합의 힘이 약화된다.

더구나 노조전임제임금이 4년후에 폐지되는 마당에 노조의 재정적 자립이
어려워진다.

그러면 조합비의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고 따라서 노조탈퇴자도 늘어
노동조합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

따라서 노조간부도 정리해고를 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또한 강성노조의 결과가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였다는 것을
일반조합원이 깨달았을 때는 노조도 온건노선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대기업 노조집행부의 의식은 강경투쟁만이 노조존재의 의의를
가진다고 여겨왔기 때문에 정리해고나 파견제의 도입은 노조의 파멸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드러내 놓지 못하는 숨은 반대이유다.

지금의 노조지도자들이 앞으로 협력적 노사관계를 지향한다면 정리해고나
파견법의 도입을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한국노총과 민노총이라는 경쟁관계에서 두 법안에 먼저 찬성한다면
먼저 찬성한 노조가 마치 어용이라는 인상을 받아 하부조직에 타격을 입을
것을 걱정하여 선뜻 찬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옳은 지도자라면 이 국가 난국에 다수의 근로자를 위하는 길이
어떤 길인가를 너무도 자명하다.

올해 모든 근로자의 임금이 삭감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기업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임금이 줄면 퇴직금도 줄게 된다.

평균임금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여금을 받은 것으로 하고 다시 회사에 돌려준다.

퇴직금이 안주는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주지도 않은 임금에 기업으로 하여금 억지로 근로소득세를 내게 한다.

한푼이 아까운 자금사정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평균임금이라는 잘못된 제도를 일본법에서 따랐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임금이 줄어가는 현상에서 평균임금과 통상임금으로
이원화되어있는 현 제도를 표준화금리로 단일화해서 일시적으로 임금이
줄더라도 퇴직금이나 재해보상금이 줄지 않도록 하는 것이 노사협력에도
좋고 근로자에게도 좋은 것이다.

옳은 노조지도자라면 이런것을 제기하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임금제도의 개선은 정리해고나 파견법 못지않게 근로자나 기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나 기업인도 자세를 바꾸어야 하지만 노동계지도자들도 명분과
실리에만 집착하지 말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택할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거듭난 자세가 필요할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