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환협상 대표단이 단기 외채의 상환기한 연장을 골자로 하는 독자적
인 첫 협상안을 국제 채권은행단에 제시함에 따라 그동안 겉돌아 왔던 외채
협상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이날 대표단이 내놓은 안은 정부 지급보증 부담을 최대한 낮추면서 국내외
은행간 직접 협상을 통해 단기 외채 상환기한을 재연장토록 하되 한자리
숫자의 금리를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관심사의 하나인 금리 문제와 관련, 이날 회동에서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으나 대표단 관계자는 "연장되는 단기외채의 적용금리가 상식 수준
이상일때는 받아들일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해 이같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이날 회동에서 한국 대표단은 JP모건 등 채권은행단 일각에서 거론
했던 고금리의 국채발행 계획에 대해서도 "수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전달,
이에 대한 채권단측 반응이 주목된다.

대표단의 이런 협상안은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을 비롯, 윌리엄
맥도나우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 미국 정부측 고위관계자들과 사전
논의를 거친 것으로 알려져 수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게 대표단측 전망
이다.

미국 정부관계자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외환위기에 대한 해결방향이
조기에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 동남아시아에서 다시 재연되고 있는 금융불안
에 나쁜 영향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 "해법"의 조기 타결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여기에 한국에 대한 "대출 지분"이 미국계 은행들보다 훨씬 많은 일본과
유럽계 은행들 역시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자신들의 대출금 회수에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고금리 부담이 있는 국채발행
계획 등에 대해 반대, 한국측 입지에 도움을 줘 왔다.

실제로 유럽계 은행단은 한국 금융기관들이 안고 있는 2백50억달러의 단기
부채에 대해 국제기준금리인 리보에 2~2.5%의 가산금리(총 8% 안팎)를 얹는
비교적 낮은 이자율로 1~5년간 연장해 줄 것을 골자로 하는 독자안을 마련,
미국측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개에 달하는 국제 채권은행들이 단기간내에 다양하고 이질적인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율, 한국측이 제시한 협상안에 대해 금세 단일 대안을
제시할수 있을지는 속단키 힘들다.

이들 은행 대표들이 이날 오전 9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마라톤 회의"를
갖고도 결론을 내지 못해 22일과 23일 오전에 연거푸 회의를 속개키로 한
것이 이같은 "중구난방"의 어려운 속내를 엿보게 한다.

이미 수십개에 달하는 채권은행단이 협상대표를 10개국 14개은행으로
줄인데 이어 다시 그 규모를 축소, 23일 오후 한국 대표단과의 2차 협상에
임하기로 한 것은 이런 어려움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그동안 단순 만기재연장에 가장 강력히 거부감을 맥도나우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직접 설득을 펴기 시작함에 따라 의외로 국제 채권
은행단간의 합의가 빨리 도출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이와관련, 남은 문제는 연장대상 단가 채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급보증
여부다.

정부는 국내 금융기관들 가운데 자체 신용력이 있는 곳에 대해서는 정부
보증없이 상환기한을 연장받을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국제 채권은행들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 관심거리다.

이들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의 가닥을 잡을수 있을 것인지는 23일 오후
시티은행에서 속대될 2차 협상 결과에 달려 있는 셈이다.

남은 이틀동안 치열하게 전개될 "막후 협상"이 주목되고 있다.

< 뉴욕=이학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