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한 기업이 "경영컨설팅이 문제였다"고 주장하며 컨설턴트측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사상 초유의 "부실 경영컨설팅 소송"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회계 부실감사에 대한 소송은 종종 있어 왔지만 컨설팅이 부실
했다며 그것도 한국 원화로 환산해 4조원을 넘어서는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은 처음이어서 미국 법조계도 흥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지는 이 소송건의 결과에 따라 유사한 부실 경영컨설팅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하는 등 미국 언론들도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부실 경영컨설팅 소송 1호의 원고는 파산한 소매체인기업인 메리-고-
라운드 엔터프라이즈의 파산 관리인.

파산 관리인은 지난 1일 이 회사의 주주와 채권단을 대신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메릴랜드주 항구도시인 볼티모어의 법원에 냈다.

피고는 세계적인 회계법인겸 컨설팅회사인 어니스트&영이며 배상요구
액수는 40억달러.

소장에 따르면 어니스트&영 소속의 컨설턴트들이 서툴러 결과적으로
가뜩이나 경영이 힘들었었던 메리-고-라운드 엔터프라이즈의 구조조정
(리스트럭처링) 작업을 더 망쳐놓았다는 것이다.

한때 1천4백개의 체인을 거느렸었던 이 대기업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지난 93년12월 비상임 고문의 권유에 따라 어니스트&영에 경영컨설팅을
요청했다.

회사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리스트럭처링 전략을 컨설팅해 달라며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어니스트&영이 파견한 컨설턴트들은 경험이 적은 주니어급이었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기초적인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고 소장은 지적했다.

심지어 이들 컨설턴트들은 상황을 낙관하는 편이었으며 채권은행들이
난리를 피우자 겨우 경비절감 프로그램을 짤 정도로 컨설팅의 감이 뒤졌다며
고소했다.

이에따라 적자가 나는 체인들에 대한 폐쇄조치가 지연됐고 자연히 회사는
적자만 부풀린채 법정관리 신청과 청산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는 주장이다.

어니스트&영측은 근거가 없는 불평이라고 일축했으나 소송이 진행될수록
이미지가 실추될지 모른다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또 완전 패소해 청구액을 모두 배상해준다고 할 경우 어니스트&영의 미국
내 한해 매출액을 단번에 날리는 셈으로 치명적인 손실을 보게 된다.

사상 초유의 부실 경영컨설팅 소송이 어떻게 끝을 맺을 지에 따라 회계
부실감사에 이어 경영컨설팅이 민사소송의 주요 메뉴로 오를 수도 있어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 양홍모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