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스위스 국립공과대학(ETH)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11년에 교수가 된 곳은 스위스나 독일 대학이 아니라 체코의 프라하에
있는 칼로바 대학이었다.

지금도 ETH 교수의 30%는 외국인들이다.

독일의 괴팅겐 대학에는 미국인 영국인 일본인도 정교수로 있다.

나치스가 독일에서 정권을 잡은 후 많은 과학자들이 영국이나 미국 대학
으로 자리를 옮겼다.

막스 본은 영국으로 가서 영국시민이 되었고, 제임스 프랑크나 바이스코프
와 같은 물리학자들은 미국으로 갔다.

하버드나 프린스턴 같은 대학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교수 자리가 하나 생겼을 경우 전 세계적으로 광고를 해서 국적 성별 종교
등을 가리지 않고 학문적으로 가장 우수한 사람을 교수로 초빙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전통은 영국과 호주의 대학들도 가지고 있다.

특히 영국과 호주의 대학들은 강좌제이기 때문에 한 분야에 정교수는 한명
뿐이며, 자동 승진이란 전연없고 정교수 자리가 비게 되면 전세계적으로
공모해서 초빙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의 대학들은 총장까지도 전세계적으로 공모를 하기 때문에
영국인이 호주 대학의 총장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 총장은 호주대학 출신이며 글라스고 대학 총장은
뉴질랜드 대학 출신이다.

영국인 프랭크 로드스는 미국 코넬 대학 총장을 20여년이나 한바 있다.

배타적이기로 유명한 일본 대학, 특히 국립대학에서도 이제는 외국인을
정교수로 임명하고 있다.

과거에는 반드시 일본어를 해야 되는 조건이 있었으나 이제는 의무적인
것은 아니다.

3년전까지만 해도 외국인 조교수가 2백명 이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정교수도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은 어떠한가.

교육법 제75조와 교육공무원법 제2조에 따라 국립대학 교수는 교육공무원
이며 한국 국적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조항을 개정하기 전에는 외국인을 국립대학 교수로
임명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포항공대는 사립이므로 지금까지 35명의 외국인 교수를 임명해서 최고
5년까지 근무한 경우도 있다.

현재 포항공대에는 30여명의 외국인 박사후 연수생(Post Doc)이 연구하고
있다.

또한 한학기씩 공부하러 오는 외국인 학생은 독일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에서 오고 있다.

이들은 과목을 택하러 오는 것이 아니고, 한 학기동안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고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대학이 진정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외국 학생들이 많이
오고 외국인 교수를 자유롭게 채용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 학생들이 와서 우리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하려면 당연히 우리말을
배워야 하나, 한국 문학이나 역사를 배우려는 학생들은 그렇게 하겠지만
과학이나 공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최소 1년간을 우리말을 배울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든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공대에서는 외국 학생들을 위해 영어로 강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즉 헝가리어를 몰라도 영어만 알면 부다페스트 공대를 졸업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국력이 더욱 신장되어 외국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운 후에 우리나라
대학에 유학을 오기 전까지는 우리도 그와 비슷한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중국의 명문대학 총장은 한국의 여러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었으나 그 대학
들을 방문해본 결과 한 대학을 제외하고는 배울 것이 없었다는 말을 하였다.

우리가 외국 학생을 받아들이고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려면 그에 상응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공부한 후에는 친한파가 되도록 하려면 교육 내용이 건실하고
교수들이 학생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포항공대에서는 중국 연변동포 10명을 대학원에 입학시켜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공부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3명이 박사학위를 받았고, 3명이 석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의 경제가 조금만 좋았더라면 이들은 대부분 북한에 유학갔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대학들도 연변 동포들을 몇명씩 교육시키면 중국 교포들이 한국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생활비를 포함해서 장학금을 충분히 지급하지 않으면 이들은
한국에 와서 공부를 할 수 없다.

독일 유학을 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독일의 제도를 좋게 말하고, 영국
유학을 한 사람은 영국을 좋게 말한다.

미국 프랑스 일본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학사과정 학생을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대학원교육을 제대로 하는 대학에서 외국인 대학원 학생을 선별적
으로 받는 제도를 고려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립대학에서 외국인을 정규교수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법개정을 하는 것이 대학의 국제화를 앞당기는 길이다.

사립대학은 지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하지 않고 국제화 세계화를 논의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