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카 휴스턴, 다이앤 키튼, 조디 포스터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미국의 명배우이자 감독 명함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 할리우드에서
실력과 명성을 갖춘 배우의 감독데뷔는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질 뿐 아니라
은근한 요구사항이다.
명배우들은 풍부한 촬영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종종 전문감독을 능가하는
수작을 내놓아 이름을 더욱 빛낸다.
알 파치노와 케빈 스페이시도 최근 "배우겸 감독"대열에 합류했다.
알 파치노는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개성파배우의 대명사.
"대부2" "개같은 날의 오후"등으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에 여덟번
노미네이트됐고 "여인의 향기"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케빈 스페이시 역시 알 파치노에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연기자.
"세븐" "유주얼 서스펙트"등에서 강렬한 악역연기를 보여줬다.
두 배우의 감독데뷔작이 늦가을 안방극장을 찾아왔다.
알 파치노의 "뉴욕광시곡"(96년작)과 케빈 스페이시의 "알비노 앨리게이터"
(97년작).
"뉴욕광시곡"의 원제는 "리처드를 찾아서(Looking for Richard)".
알 파치노는 연극무대에서 시작된 파란만장한 연기인생을 결집해 보여줄
수 있는 소재로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택하고 형식은 "영화속
영화"인 액자구조의 다큐멘터리 구성을 취했다.
"리처드 3세"를 영화화하려는 알 파치노는 셰익스피어에 일가견이
있는 케네스 브래너, 제임스 얼 존스, 케빈 클라인과 대화를 나누고 거리에
나가 시민들에게 셰익스피어와 리처드3세를 아느냐고 묻는다.
알 파치노는 리처드3세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시하며 셰익스피어의
고향을 답사하고 전문학자들을 찾아가 의견을 구하는가 하면 작가및
배우들과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다큐멘터리 화법으로 제시되는 이같은 과정과 대사연습 리허설 영화적인
재연이 시시각각 교차되며 "리처드 3세"의 진실을 파고든다.
"리처드 3세"에 대한 탐구열과는 별도로 알 파치노는 한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 그 자체가 얼마나 눈부신 창조적 예술적 행위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위노나 라이더 알렉 볼드윈등 낯익은 얼굴들이 주역으로 등장하고
알 파치노의 오랜 동료인 케빈 스페이시도 버킹검역을 맡아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비친다.
"알비노 앨리게이터(백색 악어)"는 "디노의 마지막 기회"란 폐쇄된
지하술집에서 3인조 강도와 5명의 인질이 벌이는 고도의 심리극이다.
영화"글렌게리 글렌로스"에서 잭 레몬 알 파치노 알렉 볼드윈과 함께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심리극의 진수를 보여준 케빈 스페이시.
이같은 영화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배우의 연기력.
감독은 매트 딜런, 페이 더너웨이, 게리 시니즈, 조 만테냐등 연기파
배우들을 모아놓고 "생존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희생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대답은 백색악어.생존을 위해 별종인 백색악어를 희생양으로 삼는
악어떼들처럼 자신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줘야만 하는 극한상황에
몰린 인간의 심리를 감독은 빠른 카메라와 세밀한 연출로 치밀하게 묘사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