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간 계속 상승세를 보여온 임금인상률이 올해는 큰 폭으로 꺾여
4년만에 가장 낮은 5.8%를 기록했다는 것은 우리 근로자들이 고통분담에
동참함으로써 노사간에 경제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천2백2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임금인상률은
통상임금기준 평균 5.8%로 지난해보다 3%포인트나 낮아졌으며 5.5%였던
93년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노조측이 제시했던 임금인상안과 협상타결까지의 임금협상횟수
등에서도 자제와 협력의 자세를 읽을수 있게 해준다.

이같이 낮은 임금인상률은 임금을 동결한 업체와 무교섭 타결 업체가
크게 늘어난데 따른 것으로, 대기업까지 잇달아 부도사태에 휘말리면서
거의 모든 사업장을 덮친 위기의식이 근로자들의 자제를 이끌어낸 결과라고
보는것이 일반적인 해석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올해의 낮은 임금인상률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것은 올해가 새 노동법 시행에 따른 선진노사관계의 정착가능성을
시험하는 첫 해이며 그 첫 시험중 가장 어려운 임금문제를 노사가
협력해 성공적으로 풀었다고 평가할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 각 사업장에서 볼수 있었던 노사화합 분위기를 새로운 선진국형
노사문화의 정착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 노동계에는 기회만 있으면 노동운동을 정치투쟁이나
사회개혁투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으며 이들은 이번 대통령선거를
이용해 노조의 정치세력화를 꾀함으로써 경영계의 촉각을 곤두서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경험했던 것처럼 기업경기가 되살아나면 그동안
쌓였던 근로자들의 욕구가 일시에 분출해 임금안정은 물론 전반적인
노사협력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세는 경제의 호-불황과는 관계없이 선진국형 임금구조, 선진국형
노사문화로 방향을 잡아가지 않을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미 국내 근로자들의 임금은 오를대로 올랐다고 봐야 한다.

지난 3일 노동부가 발표한 임금구조 기본통계를 봐도 96년 6월급여
기준으로 월평균 1백만원이상의 임금근로자는 61.9%(90년 12.3%)인 반면
50만원 이하는 3.8%(90년 85.9%)에 불과해 90년대 들어 고임금현상이 얼마나
빨리 진행되는지를 실감케 한다.

뿐만 아니라 남녀간 학력간 임금격차가 크게 줄어들어 선진국형
임금구조로 급속히 전환되는 모습이다.

이같은 흐름은 우리의 노사관계와 노동정책도 이젠 지나친 임금집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함을 일깨워준다.

대신 선진국처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통한 고용안정과 고용형태의
다양화에 따른 근로자의 적응력 개발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노사관계의 선진화는 임금안정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탄력성도 동시에
갖춰야 이룩될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