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증시의 붕락은 경제정책을 총괄하고있는 정부와 정치권에 책임이
있습니다. 증권사들이 매도자제를 결의한들 얼마나 효과가 있겠읍니까"

17일 아침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증권사 사장단회의에서 증권사 사장들이
상품주식의 매도를 자제하자고 결의하며 한결같이 내뱉은 불만들이다.

같은 시간 서울 맨하탄호텔에서 열린 투신사 회장단회의에서도 "정부가
기아자동차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고 기아자동차도 더 이상 국민기업
운운하며 국민들을 담보로 잡지 말아야 한다"며 정부와 기아경영진에 대한
원성이 터져 나왔다.

증시 붕락은 사실 기아사태이후의 금융시장불안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아사태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외국인들은 한국시장을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기아자동차가 부도유예협약대상으로 지정된후 정부 채권단과
기아의 경영진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 사실이 외신을 통해 해외에
알려지면서 한국기업의 이미지가 하락, 외국인들의 투매를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연영규 증권업협회장은 이날 증권사 사장단회의 후 "증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아사태를 조속하게 해결시키고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면서 증시회생의 열쇄를 기아사태의 해결이라고 단언했다.

경제상황을 외면한 정치권의 무책임한 행동도 증시 붕락의 원인이 됐다.

대선을 앞두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정치인들이 경제를 주름지게
하고 증시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권주자들이 인기에 영합하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어 기아사태 등
난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 증권사 사장은 "정치인들이 경제현실을 외면한채 오직 대권에만 몰두,
인기영합적인 발언을 하고 있어 기아사태해결을 더디게 했다"고 비난했다.

물론 이번 증시 붕락이 아시아시장에 대한 투자비중을 줄이고 있는 외국인
때문이라는 점도 부인할수 없다.

그러나 기아사태가 쉽게 해결되고 정치권에서 경제난를 직시, 문제해결에
나섰다면 증시가 붕괴위기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게 증권사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증시 붕괴는 이와함께 정부의 수급정책실패에도 원인이있다.

경제상황을 파악하지 못한채 한국통신주식을 무리하게 상장시키려한
것이라던지 지난달 유상증자기준중 배당요건을 시행 1년도 되기전에 완화한
것은 증시수요자들의 입장을 완전히 짓밟은 것으로 밖에 해석할수 없다.

이에따라 한국통신주상장을 보류하고 공기업주식의 매각을 억제하는 등
강력한 공급축소방안과 수요진작책을 증권계는 건의하고 있다.

수요진작책으로는 98년말까지인 상장사주식 양도차익비과세기한을 98년에서
2천년이후로 연장하고 일정규모이하 투자자가 3년이상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해서는 배당소득세를 분리과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근로자주식저축의 한도를 1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세액공제를 5%에서
10%로 각각 늘리고 저축기간도 올해말에서 2천년말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단의 안정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미 가고 있는 내외국인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회복시키기 힘들다는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박주병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