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드는 선거 못지 않게 국민의 넓은 공감을 사면서도 현실은 그 반대
방향으로 치닫는 것이 다름아닌 이 사회의 낭비적 혼례문화다.

왜 그런가.

쏟아져 들어오는 남의 집 청첩장엔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자기 자녀
혼례엔 한 없이 관대해지는 이기적 본성이 그 주범이다.

역대 군사정권이 국민의례 준칙을 시행하는 등 강도높은 간소화 시도도
해봤지만 번번이 일과성으로 끝나 오히려 고지식한 사람만 손해를 본 것이
실정이었다.

심지어 모범을 보일 고위 공직자집 혼례식에서 뒷구멍으로 더 두툼한
봉투가 들어오는 일은 오히려 공개된 비밀이었다.

마침 소비자보호원이 혼례문화 실태를 표본조사,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건전화 방안을 어제 발표했다.

평균 혼례비용이 7천5백만원으로 미국의 4.8배, 일본의 3.2배이며 연간
총비용이 국민총생산의 6.5%, 정부예산 규모의 42.5%라는 지적은 차라리
놀랍지도 않다.

이 엄청난 낭비를 줄이는데 있어서 체면과 외관을 중시하는 전통 가치관의
시정없이 인위적으로 겉모습만 바꿔 보려는 시도는 한마디로 무모한 측면이
강하다.

근본적으론 의식주생활은 제3의 물결을 타고 급격히 현대화되면서 의식
구조는 여전히 농경문화 수준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 국민 모두의 탓이다.

그러나 시류라고 해서 흐르는대로 방치할수는 없는 일, 과거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찾아 문화운동에 걸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일률적 관제적 규제방식이 아니라 시민운동 방식에다 세제를
통한 경제원리를 가미하는 발상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소보원의 권고표준, 가령 하객수 1백명 이내라든가, 7백33만원인
예물가액을 1백만원으로 낮추는 등의 기준이 공표돼 있으면 없는 쪽보다는
낫다고 본다.

혼주 쌍방이 체면에 얽매여 격을 낮추어 합의하기 어려울 것이고 이럴 때
어떤 공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운동주체는 집안혼사에서 사실상의 주도권을 쥔 주부들이 맨앞에 서고,
실제 혼례당사자인 미혼세대가 손을 맞잡는 것 이상 더 효과적인 것이 없다.

주부클럽 소비자단체 어머니회 등 많은 기존 여성단체들이 선봉을 선다면
새로 단체를 만들 필요도 없다.

최종 수요자의 집합체인 대학의 학생운동이 이 시대적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면 혼례합리화의 장래는 밝다.

나아가 혼례문화 역시 수요와 공급이 있는 경제행위라는 사실에 유의,
수요억제부터 손을 쓰는 일이다.

수급에 가장 큰 조건은 가격이며 정부가 가격에 영향을 주는 방식은
바로 과세수단인 것이다.

사회이목이야 어떻든 굳이 호화결혼을 해야겠다면 응당 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순리가 된다.

정권이 바뀌는 대선기간이 이런 운동에 부적합한 때라고 봐선 안된다.

오히려 이런 현실적 문제에 후보나 정당들이 대안을 내야 그게 현실에
바탕을 둔 정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