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마음고생을 해야되는 아이다.

남들은 빌딩 하나를 갖기 위해 일생동안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냐. 평생을
모아도 안 되는데"

"그러니까 내가 5년간이나 부은 적금에 아버지가 감탄해서 지어주신 것
아니에요? 저 엉터리 아니에요. 지금도 2억짜리 적금을 붓고 있어요"

김치수는 적금을 붓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후한 점수를 준다.

그것은 자수성가한 사람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허무맹랑한 일에 돈을 쓰는 사람을 가장 경멸한다.

딸아이가 이억의 적금을 붓는다는 말에 너무 감격해서 당장 그 통장을
보여달라고 보챈다.

난처해진 영신은 내일 오후에 오면 보여드린다고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는다.

이억짜리 적금 통장은 그러니까 일억을 빌려주는 담보같은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영신은 아버지와 한말을 그대로 지영웅에게 전하고 아무래도 행운의
조짐이 온다고 박장대소한다.

지영웅은 그녀가 하자는대로 일찍 은행에 가서 그 적금통장 두개를 모두
영신의 이름으로 명의 변경해다가 주기로하고 너무도 황홀하고 일이 잘
풀리는데에 기분이 날아갈것 같다.

정말 이런 세상도 있는가? 몸을 안팔고도 살수있고 깨끗하고 당당한
골프코치로서 성공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그녀에게 전화로 키쓰를 날린다.

신바람나는 쪽쪽소리가 듣기좋다.

"자기 잘자. 그리고 나는 당신이 쾌차할 때까지 꼭 프로를 딸것이니까
내사랑. 이봐 영신 나는 당신이 나올때까지 꼭 프로를 딸거니까 맹세코"

"브라보! 우리 지깡쇠님 부디 그 결심으로 여자들도 물리치고 일억
오천쯤하는 아파트를 보십시요.

그 오피스텔에서 오천만원은 나오겠지요?"

"온채 전세를 노을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면 어디로 위치는 어디가 좋을까? 한 30평은 되야 우리 마돈나께서
품위있게 쓸수가 있지 않을까요?"

"시내는 복잡하니까 교외가 어때요? 그리고 이왕이면 나가라 들어가라
안하는 내 빌라는 사면 어떨까요? 이왕이면 강변에 있는 새로 지은 빌라로
사봐요"

"알았읍니다.

그러면 내일부터 시간있는대로 찾아볼께요.

나는 지금 너무 기분이 좋아서 제정신이 아니에요.

영신 정말 고마워. 그리구 잘자요.

자장가를 불러줄까? 하하하 오늘은 정말 십년 묵은 체가 떠나가는 날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나에게도 외로운 황태자에게도 축복을 내리고 있군요.

사랑하는 나의 영신 내가 노래를 하나 불러줄께"

그는 통키타를 배우러 다닐때 배운 "러브미텐더"를 엘비스 풀레스리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일절을 다 부른다.

영신은 그의 노래에 너무 감동을 해서 눈물이 다 글썽해지는데 지영웅은
자기의 운명이 너무나 급하게 바뀌는 여러 징조에 목이 메어서 마지막에는
눈물에 목이 콱 메인다.

"자기 왜 울어? 응 우는거야? 러브미텐더가 러브미 슬퍼가 되서야
쓰나요? 뭐야? 바보같이 울기는 왜 울어?"

"응 이만 전화를 끊을께. 나는 당신을 너무도 사랑해서 가끔 눈물이
나와. 그대는 나의 천사야. 수호천사"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