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라운드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이후 자유무역을 저해하는 각종 반경쟁적인 관행
을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철저한 사전준비로 경쟁라운드가 몰고올 파장을 최소화하고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사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초청으로 내한한 프레드릭 제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쟁정책위원회 위원장과 공정거래분야의 국내최고
권위자인 이규억 산업연구원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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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을 상대로 한 경쟁정책 연수프로그램과 한-프랑스 경쟁정책 당국간
연례협의회에 참석차 방한하신걸로 아는데, 성과는 있었습니까.

"한국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회원국들을 상대로 경쟁정책
프로그램을 연 것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많은 아시아국가들은 경쟁정책의 수립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나 정작 아직
까지도 확실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와 연례회의를 갖고 있는데 이번 회의
에서도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과 유럽의 경제및 정치적 상황이 달라 경쟁정책의 입안과 집행의
차이점에 대한 유익한 견해를 나눌 수 있었지요"

-개도국과 선진국의 경쟁정책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특히 선진국들 중에서도 미국은 경제효율을 중시하는 반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분배의 정의를 중시합니다.

"거래거절"의 경우만 하더라도 미국은 계약의 자유를 중시해 이를 인정
하는데 비해 프랑스는 구매자의 권리를 강조해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간 철학기조의 차이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향후 경쟁정책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할까요.

"유럽연합(EU)과 미국만 하더라도 경쟁정책에 대한 접근방법이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엔 각국의 경쟁정책이 점차 유사한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는
추세이지요.

프랑스에서도 지난해 법개정으로 미국처럼 거래거절을 금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합병을 예로 들면, 프랑스를 비롯한 상당수 국가들이 독점적지위가
생길 경우 이를 무조건 금지하기 보다는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각국의 경쟁법은 정치논리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국가별로 통일된 기준을 마련한다는게 비현실적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경쟁정책에 관한 수많은 국제회의에서는 기준을 통일하기 보다는
각국의 경쟁정책상 차이점과 이러한 차이점이 존재하는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현재 OECD에서도 각국별 유사점을 찾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OECD 경쟁정책위원회에서 경성 카르텔 금지를 위한 논의가 한창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의 논의동향과 전망은 어떻습니까.

"독점력의 형성 강화 행사만을 목적으로 하는 가격고정 시장분할 고객배분
입찰조작 등 경성카르텔을 금지하자는 것이 각국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국제시장이 통합됨에 따라 특정국가가 경성카르텔에 의해 피해를 보게 될
경우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경성카르텔에 대한 예외조항의 정당성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내년쯤이면 이 문제가 매듭지어질 것으로 봅니다"

-동아시아권에서는 동종업종 종사자를 경쟁자라기 보다는 동업자로 인식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카르텔에 대한 감각이 그만큼 무디다는 것인데 경성카르텔의 금지
권고가 채택되면 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이번 권고안에는 생산과 가격의 담합행위나 공개입찰에서의 담합행위 등
구체화된 내용이 담겨질 것입니다.

이번 권고안의 채택으로 동아시아지역이 영향을 받을지는 몰라도 한국
중국 일본 등은 무절제한 경성 카르텔의 금지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국제 경성카르텔에 대한 권고안의 특징은 국제적인 협력방안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속력은 없습니다.

즉 이번 권고안이 자국의 국익에 위배된다면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세계경제가 국제화되고 있고 국제무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 경성카르텔이 규제되지 않는다면 그동안 이룩해 놓은 시장개방
이라든가 공정경쟁원칙 등이 무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OECD의 차기 의제는 무엇이 될 전망입니까.

"첫째로 국제적 기업합병을 들수 있습니다.

국제합병때 각국의 서로 다른 규제에 얽혀 막대한 비용이 초래될수
있습니다.

따라서 합병전에 기업이 각 국가에 하나로 통일된 서류를 제출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둘째 무역과 경쟁정책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장개방과 공정경쟁을 위한 논의는 목표가 같으면서도 접근방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각국의 공정거래법에 대한 정보공유에 관한 것입니다.

넷째 지적재산권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어느정도 인정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오는 가을에는 경쟁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협상이 열릴 예정이지요.

마지막으로 규제개혁에 대한 논의도 현재 진행중입니다.

특히 항공 철도 가스 전기등 인프라부문의 독점 철폐를 위해 실무작업반을
구성해 놓고 있습니다"

-WTO에 경쟁작업반이 설치되고 지난 7월에는 1차회의가 열렸습니다.

WTO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쟁정책의 의의및 전망은.

"WTO에서 무역과 경쟁정책을 다루게 된 계기는 싱가포르 각료회의의 결정
사항을 집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루과이 라운드(UR)가 종결된 후 관세장벽은 철폐되었지만 각국의 거래
관행이 비관세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져 이를 다룰 연구그룹으로
작업반을 구성할 계획입니다.

작업반은 앞으로 국제카르텔등 각종 이슈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회원국이 제기한 이슈만 논의할 것입니다.

또 경쟁및 무역정책은 별도로 논의하지 않고 양자간의 상호작용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작업반은 각국의 경제개발의 정도도 충분히 감안할 것입니다.

작업반의 역할은 UN 무역개발회의(UNCTAD) OECD APEC에서 경쟁정책에 대해
다룬 내용을 WTO 차원에서 논의하는데 있습니다.

작업반은 98년말이나 99년초쯤 WTO총회에 그간 제기된 이슈와 논의결과에
대해 정식 보고하게 됩니다"

-경쟁작업반이 WTO내에서는 연구그룹에 불과하지만 이를 근거로 경쟁라운드
가 시작될 개연성도 있다고 보는데요.

"작업반이 구성된 것이 WTO 출범이후 처음이고 논의 대상도 각국의 관심과
이의 유사점이 무엇인가 하는 기초적인 수준이어서 현재로서는 경쟁라운드로
발전할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는 WTO의 무차별및 비차별원칙 등을 경쟁
정책에 반영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수준입니다.

또 일반적인 경쟁정책 이외에도 통신 등 부문별로 경쟁정책을 활용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경쟁라운드가 단시일내에 시작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
입니다.

세계적인 필름생산업체인 코닥과 후지사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이는 WTO의 무역과 경쟁정책이 서로 얽혀서 발생한 문제여서 이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에 따라 향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제경제의 양상은 무한경쟁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법의 조화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국제
규범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국제적 조화 뿐만 아니라 통일된 규제규범을 제정하는 것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닙니다.

경쟁정책에 대한 각국의 다양성이 너무 심해 아마도 제가 살아있는 동안
에는 이같은 작업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UR가 타결된 직후 UNCTAD에서 열린 회의에서 개도국은 선진국 다국적기업
의 불공정행위를 제재하기 위한 규범을 만들 것을 제안했지만 선진국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진국들이 이를 반대하는 논리가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선진국의 태도가 최근 바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싱가포르 각료회의 결의안에서 각국의 경제개발 정도를 감안하기로
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경제개발 정도에 따라 무역과 경쟁을 제한하는 논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WTO 작업반에서도 개도국들이 다국적기업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작업반은 협상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선진국의 태도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최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맥도널더글러스와 보잉사의 합병을
인정한 것은 매우 획기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이 새로운 정책이념이나 어떤 철학에 기초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단순한 국가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 EU측도 처음에는 강력히 반대하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이를 허용했는데
쉽게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싶습니다.

"미국 FTC나 EU측 모두 잘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합병에 따른 경제적 분석에 의거한 결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보잉과 맥도널더글러스가 합병한다 할지라도 유럽 에어버스와의 전반적인
경쟁구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사실 맥도널더글러스는 그동안 운영상의 부실로 어려움을 겪어 오던 기업
이었습니다.

이번 결정은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 내린 결정으로서 합리적
이었다고 판단됩니다"

-미국이나 EU는 타국에서 일어나는 합병을 규제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관련법의 개정 움직임이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국가들이 유사한 조치를 취할 경우 WTO정신이 약해질 우려
뿐만 아니라 경쟁정책이 무역정책의 무기로 활용될 소지는 없겠습니까.

"이미 상당수의 국가가 다른 국가의 합병이 본국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될
때 당해 합병건에 대해 규제를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당한 조치로서 자연스런 주권행사의 일환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NCR와 AT&T가 합병할때 EU집행위원회는 이를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정치적 색채를 띠지 않는 독립적인 기구가 이를 규제해야 하며 오늘날
세계화된 경제현실을 외면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