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녹봉이 24만전인데 객에게 아무리 덕을 베풀어도 돈이 남아
걱정이다.

과외로 백성에게 베푼다면 명예를 노리는 것이 되고 전답을 사면
너희에게 재앙이 될 것이니 차라리 나라의 곤궁한 이들에게 흩어줌이
낫다" (병세재언록)

조선중기 청백리로 이름난 판서 이태중이 평양 감사로 재직할 때
자식들에게 한 말이다.

재물과 권세에 눈먼 사람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어렵다.

옛사람들이 남긴 청언에는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생활의 지혜가
담겨있다.

옛일을 통해 현대의 교훈을 깨우치도록 하는 고전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조선 영.정조때의 문인 이규상이 남긴 문집 "18세기 조선인물지-
병세재언록" (민족문학사연구소 역해 창작과비평사)과 중국 청대 초기작가
장조의 "유몽영" (박양숙 역해 자유문고), 소설가 이재운씨의 "연암
박지원의 새 열하일기" (명지사) 등이 그것.

"18세기 조선인물지-병세재언록"은 당대의 빼어난 인물 1백80명에 대한
기록이다.

작가는 평생 벼슬길을 사양하고 학문과 창작에 전념, "여사행"
"기구이목삼관사" "청구지" 등을 남긴 인물.

시인 학자부터 정치인 무관 서예가 화가 역관 기인 여류문인 등 다양한
계층이 망라돼 그 시대의 문화를 엿보게 한다.

더욱이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이 많아 영.정조시대의 문예사를 밝히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문원록"의 팔문장 초림체 경서여항인에 대한 언급은 문학사
연구의 주요자료로 평가된다.

만록형식의 열전 문학비평을 담고 있는 "서가록" "화주록" 등도 당시
문인들의 취향을 반영하는 내용.

"유몽영"은 임어당에 의해 처음 알려진 시문집.

"자신을 단속하는 데는 가을 기운을 차고, 이 세상을 사는 데는 마땅히
봄기운을 찬다" "문명은 과거의 등수를 매기는 데 필요한 것이요, 검덕은
재물에 맞는 것이요, 청한은 오래 사는 데 적당한 것이다" 등 난세에
필요한 수신의 덕목이 담겨 있다.

"연암 박지원의 새 열하일기"에는 북학파 영수 박지원의 일대기가
소설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진보적 의식으로 신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앞장선 그는 유려한 문장과
해박한 지식으로 대중을 깨우치고 기술이 중시되는 근대사회를 예견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세웠다.

청나라에서 벽돌로 집짓는 법을 배워오는가 하면 생산성을 높일수 있는
농업기술과 수공업 잠업기법을 적극 도입한 그의 정력적인 삶이 재현돼
있다.

중국 중심의 소설형식을 깨뜨리고 우리나라 백성의 애환을 담은 새
소설을 발표해 "오랑캐의 글"이라고 임금에게 야단맞고 양반들로부터
비난받은 일화도 소개돼 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