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의 부도 날벼락을 맞은 대전 충청권경제는 기아사태로 한계상황에
부딪쳐 있다.

특히 한보당진공장 좌초로 초토화되다시피한 당진경제는 그야말로 빈사
상태를 헤매고 있다.

대금결제를 받지못한 협력업체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거듭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없어 아우성이다.

지난 18일에도 한보회의실에서 당진지역 20여개 협력업체대표들이 부도
어음을 해결해 달라고 목청을 높였으나 헛일이었다.

이런 판에 기아사태가 났으니 기업인들은 이제 항의할 기력마저도 잃어
버렸다.

심하게 말하자면 빈하늘만 바라보며 부도공포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보협력업체인 당진의 D산업은 끝내 부도로 쓰러지고 말았다.

문제는 이같은 기업이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아에 시트를 납품해온 H기업은 돌아오는 어음을 어떻게 막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기아에서 납품대금으로 받은 진성어음도 통용되지 않는다.

금융기관들은 한술 더 떠 할인받은 어음대금까지 갚으라고 채근한다.

매월 5억원대의 피스톤링을 기아에 납품하는 K기업은 이달말까지 정부로
부터 자금지원이 없을 경우 부도위기에 직면할 정도로 긴박하다.

회사간부들은 얼굴을 맞대고 둘러앉아 대책회의를 하느라 비지땀을 흘리지만
묘책이 나오질 않아 울상이다.

기아에 내장부품을 납품하는 C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

사장이 어음기일연장을 위해 거래은행에서 살다시피한다.

그동안 줄곧 신용거래를 해왔던 2차협력업체들까지도 현금결제를 요구하고
있어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이처럼 빠른시일안에 자금숨통이 터지지 않으면 30여개에 달하는 협력
업체들의 내일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재경 당진군 기업인협의회장의 말은 지역경제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업인들은 경영의욕을 상실한지 오랩니다. 이제는 더이상 중소기업들이
버틸 수가 없게 됐어요"

당진지역의 유흥음식점이나 대중음식점들은 그야말로 개점휴업상태다.

가장 큰 고객이었던 한보근로자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 탓이다.

단체회식도 없어졌고 접대도 사라졌다.

외상값을 몇백만원에서 몇천만원씩 못받고 억지로 문을 열고 있는 업소들이
부지기수다.

자금난에 빠진 업소들은 속속 문을 닫아 버리거나 휴업계를 내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기아협력업체들이 있는 지역 어느 곳에서나 이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아산시 음봉면 원남리에서 한식당인 죽순산장을 경영하는 김정식 사장은
"점심시간에는 아예 손님이 없다"며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고 푸념했다.

한보 기아사태의 찬바람은 지방자치단체들에게도 몰아치고 있다.

세수가 격감, 재정을 꾸려 나가기가 여간 어려워진게 아니다.

당진군은 한보가 취득및 등록세로 납부해야할 전체 4백73억원을 미납해
이중 군세입으로 들어올 1백20억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액수는 군재정의 10%를 차지할 정도여서 군재정을 크게 압박하고
있다.

이기형 징수계장은 "소규모 주민숙원사업을 모두 중단해 버렸다"고 말했다.

한보 기아의 태풍은 당진뿐만 아니라 인근의 아산 천안 일대는 물론 대전
까지도 휩쓸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유통업체들의 매출부진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비스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는 대전충청권에서 유통업체의 매출부진은
곧 지역경제의 침체를 몰고온다.

백화점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장기간 세일등 다양한 판촉전을 동원하고
있지만 마이너스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재래시장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나쁜때가 많았지만 요즘처럼 나쁜때는 없었다"

20년간 대전 중동재래시장에서 옷가게를 하는 김모 사장의 하소연이 이
지역경제현실을 웅변해 주고 있다.

<대전=이계주 기자>

*** 한마디 ***


신가현 < 대전상의 부회장 >

이 지역경제는 중견기업들이 재채기만해도 중소기업들이 감기에 걸릴
정도로 매우 열악하기 짝이 없다.

최근들어 지역 중견기업들의 부도가 증가하는등 지역경제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어음부도율이 지난 4월이후 세달째 1%대를 넘어섰고 부도업체수도 상반기
에만 3백20여개에 이른다.

특히 영진건설 서우주택건영 노아건설등 지역주력업종인 건설업체의 잇단
부도가 지역경제를 흔들어 놓았다.

한보 기아사태까지 겹쳐 중소기업들이 더이상 버틸수 없는 지경이 됐다.

지역경제여건이 나쁘다보니 "다음은 어느 어느 기업"하는 식으로 지역
기업들의 부도루머가 끊이질 않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숨통을 틀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하루빨리 다각적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