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의 사실상 부도는 국민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기아사태는 금융 적폐 때문이다.

이를 방치하면 대기업 부도사태는 끊이지 않을 것이며 이는 금융대란으로
이어질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기업이 자금난으로 부도위기에 몰리면 그 회사의 치부를 들추어 경영실패로
돌리면 된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한두 기업의 경영잘못으로
부도가 나는 것이 아니다.

30대 기업중 17개의 기업이 적자라는 사실에서도 그 진상을 읽을수 있다.

대기업들이 부도위험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가운데 삼미특수강 진로
한신공영 대농에 이어 예상치 못한 기아가 부도방지협약대상 기업이 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시중에는 또다른 대기업 부도위기설까지 나돌고 있다.

한두개가 아니고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위기에 몰린다면 근본적 원인을
다스리지 않고는 현 사태가 수습되지 못하고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자산과 금융부채 총액은 지난 3월말 현재
6백35조원(M3)에 달한다.

이는 GNP의 1.5배에 이르기 때문에 돈이 적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이중 제2금융권이 기업에 빌려준 돈의 총액은 2백조원에 달한다.

3개월 또는 6개월의 단기자금으로 기한이 되면 교환에 회부하고 다시
어음 한장으로 대출해주어 그 어음을 결제토록 하는 상황이다.

단기성 회전대출에 각 기업들이 매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금사는 어음부도가 커지면 종금사 자신이 도산할 수밖에 없다.

기한이 되면 어음을 돌려서 결제받고 돈이 없다는 핑계로 회전대출을
해주지 않으면 어떠한 건실기업도 부도날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업들이 종금사 등 제2금융권에서 이처럼 많은 돈을
빌려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생길수 있다.

그것은 종금사 등 제2금융권에 예금이 몰리도록 예수금금리를 높게 해주어
은행에는 돈이 없고 제2금융권에 돈이 있도록 만든 제도적 잘못에 기인하는
것이다.

일본과 대만은 은행이 국민의 금융자산의 80%를 관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40%에 불과한 금융구조상의 폐단을 안고 있다.

기아는 은행에서 5조원, 제2금융권에서 4,5조원의 차입금을 가지고
기업활동을 해왔다.

아시아자동차가 적자를 내자 종금들이 불안을 느껴 회전대출을 기피하고,
기한이 도래한 어음을 교환에 회부해 은행이 4,5조원을 몽땅 대불해주기
전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제2금융권이 가지고 있는 기업채권 2백조원을 은행이 떠안지 않는
한 기아와 같은 사태발생을 방지할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마저 있다.

그 다음의 정책적 잘못은 고금리가 이와같은 기업의 연쇄부도 사태를
가져왔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기아의 총부채 9조4천억원에 대한 이자부담은 금리를 평균 연 12%로 보아
1조1천억원이 된다.

만일 미국과 같이 5%의 금리를 부담하면 4천7백억원만 지불하면 된다.

따라서 기아가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했다면 6천3백억원의 수익이
있는것과 같다.

고금리로 기업이 쓰러지면 쓰러진 기업으로부터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함에 따라 남미 러시아 그리고 동남아에서와 같이 금융기관 도산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한보 진로 한신공영 대농 삼미특수강 기아에 빌려준 대출금을 회수못하는
종금사 등 제2금융권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부도난 어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기아가 부도나면 4조5천억원에 대한 이자 6천3백억원(연14%)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지불해야할 예금이자 5천4백억원(연12%)을 무슨 돈으로 지불할
것인가.

따라서 이제는 제2금융권의 부실화가 골칫거리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기업이 도산하면 금융기관도 같은 운명에 처한다는것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금융은 중앙은행이 엄격히 관리하도록 독립권을 부여하고 있다.

정부가 권리를 포기하고 싶어서 중앙은행의 독립을 허용한 것이 아니다.

국민이 저축한 돈이 경제발전을 위해 유효하게 사용되도록 감시해야 하고,
정치논리가 금융에 끼어들어 한보사태와 같이 국민의 금융자산을 농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중앙은행 독립문제는 국회에서 이와같은 원칙을 제대로 고려하여 심의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때문에 선진국의 금리수준인 연 6%로 자본의 값을 낮추어
기업부도 도산을 방지하고, 노임상승으로 약화된 국가경쟁력도 자본의 값을
낮추어 회복시키자는 주장을 펴왔다.

기아 회생은 금리를 6%로 하면 당장에 건전기업으로 전환되고 부도사태도
방지될수 있다.

또한 금융기관도 부도로 인한 원리금전체의 손실보다는 기업을 살려놓고
저금리라도 받는 것이 보다 현명한 대책이 될수있을 것이다.

따라서 금리인하만이 과거의 문제기업뿐 아니라 앞으로 줄을 이을
대기업부도사태를 방지하고 제2금융권의 도산도 방지할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 될수있다고 생각한다.

기아문제는 크라이슬러가 경영위기에 처했을 때 미 의회가 정부보증을
승인했고 15억달러의 자금을 연4%(당시금리 8%)의 저리로 구제해준 예를
잊지말아야 할것이다.

고금리 구제금융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수 없다는 것을 강조해두고자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