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산 컬러TV와 D램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덤핑판정을 불공정한
조치로 결론짓고 조만간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방침임을 미국측에
공식 전달했다는 소식은 우리의 통상정책이 방어적 입장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미국이 최근 한-미 자동차협정 양해록의 수정을
요구하고 심지어 민간차원의 소비절약 캠페인까지 문제삼는 등 통상압력의
고삐를 죄어오고 있는데 대한 자위적 대응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조치로 이해된다.

잘 알려진대로 미국 일본 유럽연합(EU)등 선진국들은 자유무역을
표방하면서도 무역과 투자분야에서 불공정하고 폐쇄적인 제도와 조치를
통해 우리기업에 피해를 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요즘들어서는 선진국 뿐만아니라 터키 인도 필리핀 등 후발 개도국들까지
우리 제품에 대해 반덤핑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 그냥 방관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통상산업부가 지난 5일 발표한 "각국별 무역-투자장벽 사례집"을
보더라도 우리제품이 작년말현재 11개국에서 모두 54건의 반덤핑규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국산 컬러TV와 D램반도체의 경우 최근 몇차례에
걸쳐 덤핑마진이 거의 없다는 "미소마진판정"을 받았는데도 미국측이 고의로
덤핑판정철회를 미루고 있어 말썽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미 양국간에는 현재 여러 현안들이 걸려있다.

통신분야에서는 한국이 우선협상대상국(PFC)으로 지정돼 있으며 자동차
지적재산권 수입품검사및 검역제도 등도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이 항상 내세우는 "시장원칙"을 무시하고 국제시세보다
비싸게 미국쌀을 수입하라고 한국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이같은 부당한 압력이나 불공정무역행위에 대해 우리로서는 업계
공동대응이나 민-관 연계대응노력이 부족해 무역환경개선에 한계를 드러내온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정부로서도 그동안 말로만 되풀이해온 "공세적 통상외교"의
진면목을 보여줄 때가 됐다.

한국의 현실을 무시하고 자기나름의 잣대를 기준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선진국들의 통상공세는 우리가 물러난다고 하여 멈춰질리
없다.

정부는 우리의 교역상대국들이 취하고 있는 반덤핑판정 등의 수입억제
조치가 WTO협정이나 해당국 법령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
불합리한 조치로 판단되면 단호하게 시정을 요구하거나 공정한 절차진행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측 요구에 대해 해당국이 무성의한 반응을 보일경우 WTO에 제소,
떳떳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경없는 글로벌 경제시대에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기 쉬운 쌍무협상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수 있는 다자간협상을 통해 통상마찰을 해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