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불살라 없애는 입맞춤을 함으로써 맨몸으로 그녀를 얻고 싶다.

이것은 자동차 한대라든가 화대 백만원이라든가, 그런 식의 계산된
입맞춤이 아니다.

그냥 그 자신이 그녀의 둥글고 탐스러운 입술에 닿아서 꿀처럼 녹아나는
신선하고 소중한 키스다.

지코치 자신도 아직 이렇게 무아경에서 키스를 해본 경험은 드물다.

아니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호텔 보이시절 그 고상하게 생긴 미대 여대생과는 이렇게 정신을 다
잃을 정도의 키스를 했던 것 같다.

계산된 키스는 언제나 씁쓸하다.

돈을 많이 받고 해주는 키스는 자신의 행복과는 관련이 없는 현실일
뿐이다.

아주 흡족한 돈을 받고 황홀해서 키스를 선사한 기억은 있다.

그러나 그때 그 자신은 진정 행복하지도 황홀하지도 않았다.

그는 지금 영신을 자기의 여자로 만들고 싶다는 소원으로 돈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는 지금 영신을 사랑한다.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한다.

돌아가면 모든 여자들을 싹뚝 잘라버리고 오직 영신에게 헌신하며, 오직
이 여자하고만 잘 것이다.

맞다.

개과천선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영신 달링 허니 자기야! 내 마누라야"

그는 어리광을 부리며 그녀의 작은 가슴에 큰 몸을 기댄다.

뜨거운 파라솔밑에 누운 영신의 다리에는 모래들이 묻어서 반짝인다.

날씬하고 싱싱한 몸매다.

"자기 왜 나에게 그렇게 몰두하게 된 거지? 난 사실 별 것도 아닌
평범한 여자인데. 더구나 자기보다는 아주 아주 나이많은 여자이구"

"응, 그건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걸. 다만 나는 당신과 함께
살고 싶은 거야. 그것 밖에 특별한 이유는 없어. 그냥 내가 원하는 타입의
여자야. 당신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지 않아? 처음 떠날때 그랬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이렇게 변했을까? 여행중이라서 마음이 센티해지고 낭만적이 된 것
같애"

"당신이 이혼을 한다면 나는 당신과 함께 살겠어"

"아니, 지코치는 아름다운 처녀와 결혼해야 돼. 나같은 이혼 경력이
있는 연상의 여자와 과거를 만들면 제대로 장가 못 갈 수도 있어"

영신은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이 죽으면 나는 재혼할 수 있어. 아무래도 당신보다 더 오래
살테니까 20년쯤은.... 하하하하"

그는 꾸밈없이 순진하게 말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행복해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지는
걸. 나의 경험 속에는 사랑이란 너무나 변덕스러운 걸로 되어 있어.
사랑은 꿈을 꿀때만 아름다운 거야. 실제로는 많이 다르지. 결혼도
마찬가지고"

"아니, 나는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 거야. 이렇게"

그러면서 그는 또 그녀를 부드럽게 껴안으며 데일듯이 뜨거운 입맞춤을
한다. 하고 또 한다. 입술을 부딪치는 소리가 파도소리에 녹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