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클럽은 최근 한국 프레스 센터에서 세계 유수 언론인을 초청, ''정치와
언론''이란 주제로 창립 40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의 초청 연사로 나온 독일의 유력 주간지 ''디 자이트'' 발행인
테오 좀머(Theo Sommer)의 강연내용을 요약한다.

< 정리 = 김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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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보도 자세 ]

지난 40여년간 언론의 환경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전자 미디어시대가 열리면서 매체 전달자와 수용자간에 즉각적인 커뮤니
케이션이 가능해졌고 취재영역도 전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저널리스트의 임무는 예나 지금이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도하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복잡한 시대에는 사실보도와 동시에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해설까지 덧붙여야 한다.

그렇다면 정치와 저널리즘의 관계는 어떠한가.

양측 모두 "정치적인 집단"에 속해 있는 것은 공통적이나 언론인과
정치가는 분명히 다르다.

언론은 공공의 파워를 위해 노력하고 정치인은 권력을 직접 소유하길
원한다.

언론과 정치사이엔 늘 뿌리깊은 긴장감이 감돌며 상호간의 접촉도 대단히
조심스럽다.

당연히 정치가와 언론인이 개인적인 친분을 이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기자는 정보가 필요하고 사건의 발생추이 및 특정 정치활동의 목적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자와 취재원사이의 근접성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근접성이 기자의 비판정신까지 무디게 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원론적인 정치보도자세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일부의 우려대로 진지하고 사실에 충실한 저널리즘은 선정주의 언론이
범람하는 가운데 고사당하고 말 것인가.

여기에 대해선 단연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세계각지에서 엄청난 정보가 양산되는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정보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 그에 얽힌 전후스토리를 상세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또 현재를 통해 미래의 일단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현대 언론인에겐 정확성 객관성 균형감각 및 통찰력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언론이 대중성과 전문성이라는 두가지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재 신문들은 TV에 의해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조간신문이 보도하는 뉴스는 이미 그 전날 TV에서 방영된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2000년대 조간신문은 오늘날 영향력있는 주간지들과 유사한 방향
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보다 상세한 비하인드 스토리, 깊이있는 인물탐구, 보다 정확한 분석과
논평 등이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폭넓고 심오한 취재가 필수적이다.

동시에 전문화에도 온힘을 기울여야 한다.

인간의 지식이 뻗어가는 만큼 언론도 함께 뻗어가야 한다.

얄팍한 선정주의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책임있는 언론의 자세만 견지
한다면 언론인은 영원히 숭고한 위상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가지 요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진실에 대한 관심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진실을 직시하기 싫어하는 시대조류를 과감히 이겨내야 한다.

또 자신의 희망에 맞춰 진실을 재단하고 싶은 유혹도 떨쳐버려야 한다.

둘째 언론은 열정의 조율역을 맡아야 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여론이 격렬하게 들끓을 때 이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용기있는 기자가 돼야 한다.

위험을 감지했을 때 거기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자고로 역사는 대담한 공격이 가장 안전한 방어책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진정 자유로운 언론인만이 훌륭한 언론인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냉철한 판단력을 갖추고 모든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또 어떤 정권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권력은 권력을 쥔 자를 부패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 지킬 수 있다면 언론인의 위상은 영원히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