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틀란드 러셀(1872-1970)은 그의 책에서 "기존 성윤리는 미신에 기초한
그릇된 관념일 뿐"이라고 했다.

기독교적 금욕주의는 성에 관한 터부를 조장,건전한 성개념을 형성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이 자유사상가가 지금 대학가에서 "매"를 맞고 있다.

지난6일 1백70여명의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공식석상에서 "순결서약"을
하고 나선 것.

5월축제 개막일을 맞아 치러진 이날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성희롱과 매춘이
버젓이 벌어지는 현실에서 순결을 지키는 것은 자신뿐아니라 인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며 "말초신경을 자극해 젊은이들의 탈선과 방만한
성생활을 부추기는 일부 학계와 언론은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성토.

한 참석자는 "러셀과 같은 사람들이 개념없는 젊은이들을 화려한 글로
오도해 성문화를 문란하게 만들고 있다"며 그를 비난.

참석자들은 이날 순결을지킨다는 의미로 은반지를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주기도 했다.

러셀이 머나먼 한국땅의 후학들에게 호된 "매"를 맞고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같은 날 바로 옆자리에는 일단의 러셀추종자들도 행사를 갖기도.

이학교 성정치위원회 소속학생들은 "러셀이 보았다면 중세의 영국시골이
아니냐고 물을 만한 진풍경"이라며 "순결서약식을 갖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아냥.

이들은 "여성순결은 억압이데올로기이므로 깨뜨려야 한다"며 "순결"과
"정조"라고 씌인 풍선을 발로 밟아 터뜨렸다.

이날 연세대학교에서 벌어진 두 행사를 본 학생들의 의견도 각각.

김현정씨(21.상경2)는 "도덕적으로 황폐한 시대에 순결을 서약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입장을 피력.

직장인 K씨도 "순결은 결혼생활에서 행복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라며
"학생들이 현명하다"고 칭찬.

그러나 안솔샘씨(19.인문1)는"어디까지가 정신적.육체적으로 순결한
상태냐"며 의문을 던지기도.

< 박수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