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동안 건설산업이 우리나라의 기간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주역은 누구일까.

최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1백6명의 건설업체 대표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각각
32.7%와 11.2%로 한국건설을 이끈 쌍두마차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두사람은 불굴의 의지와 경제발전에 대한 확신으로 숱한 난관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각종 신화를 엮어낸 주인공으로 평가된 것이다.

지난 67년에 착공된 소양강 다목적댐 공사는 정회장과 박전대통령의
배짱으로 쌓아올린 대표적인 작품.

당초 소양강댐 공사비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충당됐기 때문에 설계
시공등을 일본의 유수 건설업체인 "일본공영"이 맡기로 돼있었다.

일본공영은 이미 콘크리트 중력식으로 소양강 다목적댐을 설계,당시
건설부의 승인까지 받아놓은 상황.

그러나 정회장은 일본공영의 계획대로 건설했다가는 건설자금이 모두
일본으로 되돌아 갈 것이란 생각에 현장을 답사하고는 현장 주변의 흙과
돌등 자연상태를 그대로 활용하는 사력댐으로 건설해야한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일본공영은 정회장의 대안에 콧방귀를 뀌었으나 박전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전쟁이 터져 폭격을 당할 경우 콘크리트댐은 그대로 붕괴되지만 사력댐은
웬만큼 폭격을 당해도 견뎌낼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박전대통령은 오랜 고심끝에 결국 정회장의 대안에 손을 들어주었고
정회장은 당초 예산의 30%를 절감하며 소양강댐을 사력댐으로 완공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경부고속도로도 경제와 무역을
부흥시키기 위해선 고속도로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확신한 박전대통령과
정회장의 합작품이다.

박전대통령이 고속도로 문제에 대해 언급하자 반대의견이 들끓었으나
박전대통령은 그 의지를 끝내 꺾지 않았으며 정회장은 국내 첫 해외건설공사
로 기록된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시련을
경험으로 저렴한 공사비를 산출해내 박전대통령이 반대여론을 잠재우는데
일조했다.

70년 6월27일.

마침내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가장 빠른 공기에 전장 4백28km의
경부고속도로는 개통됐다.

당시로서는 단군이래 최대의 역사로 칭송된 경부고속도로는 박전대통령의
"국가의 대동맥을 이어야 경제의 피가 흐른다"는 신념과 "시련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는 정회장의 확신의 합작품이다.

추풍령의 고속도로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나라 재원과 우리나라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길"

< 방형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