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가 피어 오른다/설고도 어지러운 사랑의 모습처럼/너릿너릿
피어 오른다/공덕동에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는/공덕동에 사는 이의 사랑의
모습/순이네 집 지붕 위에선/순이네 아지랑이 피어 오르고/누이야 네
수 놓은 방에서는/네 수 놓은 아지랑이..."

미당 서정주의 시 "아지랑이"는 봄철이면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수
있었던 아지랑이의 아려한 추억과 서정을 불러 일으켜 준다.

중국의 장자는 일찌기 아지랑이를 "모든 생물이 불어내는 입김"이라고
주관적인 해석을 내리기도 했지만 실은 햇빛과 공기, 지표와 물체가
어울어져 빚어내는 자연현상이다.

아지랑이는 봄철 맑은 날에 햇빛이 강하게 내려 쪼일때 지면 위에서
불꽃과 같이 아른거리면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공기의 흐름이다.

여름철의 쾌청한 날씨에도 도로나 모래밭 초원위에서 볼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고온으로 가열된 지표나 물체에 접촉하여 더워진 공기가 주위 공기보다
가벼워져 부력을 받아 올라 간다.

또한 빚은 온도차에 따라 굴절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온도차가 있는
공기덩어리들 사이의 경계면에서 빛의 굴절이 일어난다.

이 두가지 현상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게 아지랑이다.

올 봄에도 개나리 목련 진달래 철쭉 벚등이 차례로 꽃망울을 터트려
봄이 무르익어감을 알려 주었지만 서울 도심에선 아지랑이가 한번도
관측되지 못했다는 소식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대기중에 먼지가 많아 시정이 줄어든 나머지 빛의 굴절과 공기의 흐름을
눈에 보이지 않게 했다는게 그 주원인이란다.

거리에 가뭄이 오랜 계속되어 빗물에 씻겨 내려져야 할 먼지가 공기중에
그대로 가중 부유하고 있는 것 또한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먼지공해로 인한 서울 생활환경의 악화가 극에 이르러
있음을 알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이 고층건물로 뒤덮이면서 지표면에 닿는 일조량이
줄어든데도 그 원인의 일단이 있단다.

아지랑이가 종적을 감춘 서울 도심.

당만적 서정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하기에 앞서 악화일로에 있는 생활
환경이 걱정스럽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