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이냐, 도태냐"

국내 항공산업이 기로에 섰다.

KFP사업(한국형 F-16생산)이 끝나는 99년이면 확보된 일감이 없어 대규모
생산시설과 인력이 고스란히 사장될 처지다.

특히 정부의 구체적인 항공산업 일정이 마련돼있지 않고 추진중인 사업
마저 정부부처간 이견으로 잇달아 연기되고 있어 국내 항공산업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항공산업의 앞날이 갈수록 불투명해지자 항공업체들의 투자
및 개발의욕이 크게 꺾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항공산업의 미래가 없다"라는 항공관계자들의 생각이 현재의 항공
산업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99년 이후 생산공백이 길어질 경우 이같은 의욕상실까지 겹쳐 어렵사리
쌓아올린 항공산업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다.

주요 항공부품업체들은 KFP사업이 마무리단계에 이르러 당장 내년이면
공장가동을 절반이상 줄여야할 형편이다.

항공산업은 국가방위력 증강뿐만 아니라 앞으로 국내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결정할 21세기형 첨단산업으로 분류된다.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물론이고 고난도 기술력이 요구되는 것과 함께
관련분야 파급효과가 워낙 커 정보통신 등과 함께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꼽히고 있다.

부가가치율이 현재 국내산업을 이끌고 있는 자동차(24.8%) 컴퓨터(36.9%)
보다 훨씬 높은 43.9%에 이른다는게 전문연구기관들의 분석이다.

특히 2000년대초 국내 항공시장은 2백60억달러 규모로 세계 7대 항공우주
시장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가 2005년까지 세계 10위권 항공산업국가로 키우겠다는 의지표명도
이같은 이유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7위권의 방위비 규모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항공산업분야는 세계 20위권에 머물고 있다.

매출규모 지난해 8천8백억원선, 전체 투자규모 2조7천억원, 인력 1만2천
여명으로 다른 주력산업에 비해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기술수준 역시 일부 부품을 국산화하거나 초급기종을 개발하는 단계로
기술도입과 외국과의 공동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95년 항공산업의 무역적자가 22억달러에 이르는 등 단일품목으로는
적자규모가 가장 크다는게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는 2000년에는 60억달러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국내 항공산업의 고민은 이같이 미흡한 기술력을 높이고 적자를 줄이기
위한 장기비전마저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이대로라면 90년대들어 투자규모를 급격히 늘려온 항공업계의 생산기반과
기술토대가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우선 당장 2년후면 끝나는 KFP사업의 연계사업이 미확정된 상태다.

국내 업체들은 이 사업에 가장 많은 시설및 인력투자를 하고 있어 연계
사업이 늦어질 경우 공장가동중단과 고급인력의 집단이탈이 우려되고 있다.

KFP사업에는 국내 전체 항공투자의 35%선인 9천7백억원이 투자된 상태며
인력도 4천여명이나 투입돼있다.

에어(AIR)사와 공동개발을 추진중인 중형항공기 개발사업과 2년째 중단된
고등훈련기사업(KTX-2)이 올해부터 바로 시작된다해도 양산시점까지는
시간이 걸려 일정기간의 공백이 불가피한 상태다.

항공산업이 범정부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해야할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통제기능을 갖고 효율적이고 일관성있게 사업을 추진할만한 주체가
없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방위력 증강부문은 국방부, 산업육성은 통산부, 기술진흥은 과기처,
예산운영은 재경원, 항공기운영은 건교부 등이 각각 나눠 맡고 있어 빠르고
일관성있는 사업추진이 어려운 실정이다.

업체들간의 불협화음도 문제다.

삼성항공 대한항공 대우중공업 현대우주산업 등 주요 업체들은 중형항공기
고등훈련기 공동회사설립 등 사안별로 마찰을 보여 자사의 이해관계에 너무
집착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따라서 항공산업이 21세기 주력산업으로 도약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
KFP사업의 후속사업을 빠른 시일내에 확정, 생산기반을 유지 강화하고
기술개발을 이어나가는게 시급하다.

그 사이의 생산공백을 메우기위해 F-16, UH-60 등 진행중인 사업의 추가
발주도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정책의 일원화를 위해 범정부차원의 항공산업기획단이 필요하며
항공산업의 핵심인 설계 시험평가 최종조립 등을 수행할 수 있는 종합항공
회사설립과 중형항공기 개발참여 등을 정부차원에서 추진해야할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이와관련해 전문가들은 항공산업이 천문학적인 투자가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고 투자 회수기간이 길다는 얘기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단독으로 이같은 대규모 사업을 벌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이 그동안 항공산업 육성을 위해 취해온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그 사례로 들고 있다.

< 김철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