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위원회가 구성되고 재경원이 금융기관별 업무영역확대 조정안을
내놓는 등 한국판 금융 빅뱅을 위한 준비가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금융개혁이 실효성있게 추진된다면 현 정부가 임기내에 경제문제에서 이룬
가장 큰 업적이 될수 있다.

더욱이 한보사태로 금융개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날로 확산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금융산업을 대수술해 자생력으로 활력을 찾게 하기는 실로
어렵고 고통스럽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의 병역과 현재의 환부상태를
치밀하게 진단해야 하고 이에 따라 수술의 시기 방법, 그리고 수술후의 조리
방법 등이 제시돼야 하며 또한 수술에 따른 직.간접비용및 고통 등에 대한
준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간 우리는 80년대 이후 금융제도의 개편에 대하여 많은 논의를 해왔지만
금융대수술을 구체적으로 집행할수 있는 종합적인 실행 프로그램을 제시해
오지 못했다.

그러면 한국의 금융개혁은 왜 어렵고 코스트가 많이 드는가.

지난해 11월 발표된 일본판 금융 빅뱅안은 금융기관간의 업무영역 철폐와
금융 중계수수료 책정의 자유화를 그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금융체계에 있어서 일본과 유사성이 많은 우리는 결국 금융기관의 업무영역
철폐와 금융 중계수수료 자유화를 금융개혁의 핵심내용으로 삼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추진은 금융기관간의 경쟁을 침예화시켜 많은 금융기관
의 도산과 기득권의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거운 부담 때문에 벌써부터 일부 일본 내외의 금융계는 일본판
빅뱅이 불발탄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건실한 실물경제와 대외수지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 도산의 충격을 큰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경제에 있어서 금융기관의 도산 여파는 감당하기 어려운, 따라서 매우 심각
하게 우려해야 할 사항이다.

금융기관의 도산이나 통폐합에 따른 혼란과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
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해야할 것이다.

작년도에 겨우 발족한 예금보험공사의 능력으로는 이러한 대규모 금융도산에
대응하기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리고 자유경쟁원리에 의해 은행들로 하여금 새롭게 출발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과거 은행들이 정책자금 공급기관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
에서 대부분 발생하게 된 거액의 부실채권의 족쇄를 푸는데 상당한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한편 아직까지 상당한 규모의 정책자금을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이 취급하고
있으며 또한 통화관리 목적으로 발행된 거액의 통화채를 인수및 보유하는데
협조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금융개혁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책자금공여와 통화채 인수의 의무가
철폐되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이러한 의무의 철폐만으로 끝날 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단기적으로 정책금융의 철폐는 기업의 생산과 수출에 심각한 어려움을 줄수
있으며 또한 통화채 발행의 포기는 심각한 과잉통화로 연결된다.

이러한 규제철폐에 병행해서 정부는 재정자금이나 세제및 산업정책적 지원
으로 정책금융 폐지에 따른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 주어야 하며 통화채 잔고
축소를 위하여서는 재정자금으로 통화채를 퇴장시켜 나가야 한다.

결국 고도성장 과정에서 금융산업이 실물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게 됨에
따라 과도하게 억압당하고 기업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금융산업의
상당부분이 부실화되었던 것이다.

부실산업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기술적인 방법도 중요하지만 핵심적인 것은
돈이 있어야 한다.

금융개혁을 통해 금융산업을 건실한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
이 필요하다.

이 자금은 부실산업 주체인 금융산업에서 조달될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실물
산업과 일반국민으로 부터 얻어 쓸수 밖에 없다.

어떤 금융개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재정자금 조달이
불가피하다.

그러면 이러한 재정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대부분 재정증권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일반 국민과 기업이 금융개혁에 따르는 비용중 많은
부분을 감당하게 되는데 이러한 선택은 국민적 합의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금융개혁은 반드시 국민적 호응을 받으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금융개혁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의 하나는 이러한 측면을 유의
해야 금융개혁에 따른 이익과 비용을 엄정하게 객관적으로 밝혀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지하는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부문이 경제의 다른 부문과 밀접한 연계관계를
이루고 있으므로 금융부문의 총체적인 조정은 경제전반에 대한 정책적 운용
방식의 조정을 요구하게 된다는 측면을 고려해 금개위는 금융부문의 개편
문제에만 그치지 말고 우리 국민경제 전반을 새롭게 관리해야 하는 문제도
다루어야 한다.

한보사태의 재발방지가 금융권의 개혁만으로는 이뤄질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금개위는 서둘러서 졸속하게 일을 해서는 안된다.

보다 심도있고 확신이 서는 연구자료의 뒷받침이 되기 전에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금개위의 연구보고서가 다른 나라에서와 같이 앞으로 우리대학에서 금융론을
강의하는데 교재로 이용될수 있는 객관적이고 수준높은 보고서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