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던 사람은 쓰러지더라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그러나 한껏 달리던 자가 한번 넘어지면 크게 부상을 당하기 마련이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장이란 단어는 최고경영자에게는 유혹의 단어이다.

흔히 기업인수기사가 언론에 보도되면 그 기업의 빛나는 성장 모습에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잘 나가는 기업일수록 달리는 사람처럼 위험의 정도는 더욱 크다.

기업의 재무제표에 손을 얹으면 그 숨소리가 들려온다.

매출액 성장률이 높은 기업은 매출액 증대에 따른 설비 자금 외에 추가
운전 자금의 부담 때문에 허덕이는 숨가쁜 호흡이 느껴지며 반면 성장이
정체된 기업의 재무 수치에서는 수면중인 사람의 숨결처럼 조용하다.

기업의 성장과 위험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유지 가능 성장률
(sustainable growth rate)을 항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외부 자금의 조달없이 기업이 스스로 창출한 내부 자금만으로
성장을 꾸려갈 수 있는 성장률이다.

이 비율의 계산은 기업의 자기자본 순이익률에 내부유보율 즉 1에서
배당 성향 (배당액/당기순이익)을 차감한 비율을 곱하여 구해진다.

만약 실제 매출액 성장률이 유지 가능 성장률보다 크다면 이는 외부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반대의 경우는 내부 자금이 남아도는
것을 뜻한다.

그 차이가 기업의 자금부담 위험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다.

종금사 인수시도 등 그간 지속적으로 기업 인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한보 철강이 부도가 났다.

M&A란 성장을 사는 것이란 시각 외에도 성장을 파는 것이라는 또 다른
일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하여 안타깝다.

한보의 유지가능 성장률은 과연 얼마였을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