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에 바쁘면서도 고교동창생끼리 만나면 푸근해지고 한도없이
천진난만해진다.

고향과 청색교복의 까까머리 우리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큰 즐거움
이다.

1989년쯤, 청주고등학교 40회 동창생들 4명이 등산모임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청풍명월회 (청명회)".

우리모임은 처음부터 가족들을 동반했다.

부인들끼리 잘알고 서로 만나는 기회도 많았으므로 시작이 쉬웠다.

부인들때문에 젊잖은 듯한 분위기가 돼 친구들이 농담을 자제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은 더 진하게 농담을 해댄다.

아주머니들은 남편들이 진한 농담을 해도 적당히 균형을 잡아주며
자기들끼리 종알종알 즐겁다.

월 1회 정도 만나 도봉산 수락산 북한산 같은 곳을 오르는데 고향얘기
정치얘기 생활비얘기 등 끝이 없다.

하산후 순두부집 선지국집 같은데서 남녀 섞여 앉아 결산해보는 시간이
등산의 하이라이트다.

얼마전에는 1박2일로 충주수안보를 다녀왔다.

처음에 힘겨워하던 사람들도 하산때가 되자 힘이 다시 솟아 앞장을 서서
팀을 재촉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노래방에서 남자들은 고래고래, 아주머니들은 카랑카랑 노래
실력을 뽐냈다.

충청도식으로라면 친구부인들을 젊잖게 대해야 할 터이지만 함께
노래하며 노니 더 재미있더라 하는게 통설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우리 아주머니들이 이 모임을 통해 확실하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 생각한다.

회원동창들을 평해보자.

태웅무역 박상철 사장은 등산 전문가답게 강인한 리더쉽을 가지고
있는데 팀이 북한산 연필봉같은데에 부닥뜨리면 맨앞에 나서서 한사람
한사람 잡아주고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곤 한다.

아주머니들의 손을 잡는 영광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주장하며.

세종대 박종국 교수는 최고로 자유분방한 입을 갖고 있는데 아주머니들을
배꼽잡게 만들며, 회장인 공무원연금공단 박종대 차장은 한고조 유방을
뺨치는 군자다.

세무사사무소 채시영 사무장은 등산초입에 제일 많이 떠들어 팀이 무언지
모를 기대에 들뜨게 만드는데 그러고서는 산자락이건, 순두부집이건 가리지
않고 슬그머니 잠들어 버린다.

이제 몸들이 자꾸 불어서 하루라도 운동을 안하면 안되는 상황이니 더욱
자주 모여야겠다.

40회 동창들의 인기와 신망을 모으고 있는 내무부 감사관 안재헌 동문,
40회 재경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김환선 인테리어사장이 참가할 예정이어서
모임이 더 즐거워질 것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