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배야. 아이구"

우이저는 밤새도록 배를 움켜쥐고 뒹굴다가 새벽녘에 이르러 하혈을
하며 살덩어리 같은 것을 아래로 쏟아놓았다.

시녀들이 그 덩어리를 살펴보고는 기겁을 하였다.

형체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태아로 사내아이라는 흔적까지 붙어 있었다.

가련도 달려와 그 사태를 보고는 우이저를 진맥하고 약을 지어준
의원을 저주하였다.

하인을 시켜 의원을 잡아오도록 하였으나 의원은 이미 소문을 듣고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가련은 급히 다른 의원을 불러 우이저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약을 잘못 썼군요.

간맥이 약한 것을 보고, 목이 성하여 화가 일어난 것으로 오진을 하여
약을 썼기 때문에 태아가 녹아내린 것입니다.

태기가 있어도 간맥이 약할 수 있는데 경험이 부족한 의원이라 일을
저지르고 말았군요"

그러면서 의원은 우이저가 회복될 가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애매한 말을 흘리며 탕약과 환약을 같이 써보라면서 허겁지겁
처방을 해주고 급히 나가버렸다.

우이저는 사내아이까지 유산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낙담이 되어 살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하긴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해도 이미 몸의 원기는 다 빠진 뒤였다.

우이저는 간호하는 시녀들을 돌려보내고 숨겨둔 생금 덩어리 한 개를
꺼내었다.

아직 제련을 하지 않아 독한 성분들이 섞여 있는 그 생금을 삼키면
양잿물을 먹은 것처럼 자살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기억이
있어, 우이저는 그 생금을 입안에 넣고 몇번이고 손으로 눌러 겨우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새옷으로 단정하게 갈아입고 머리치장을 한 후에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

원앙검으로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한 동생 우삼저가 저기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다음날 아침,싸늘한 시체로 변한 우이저를 발견하고 시녀들이 통곡하였다.

가련이 달려와 우이저의 시신을 끌어안고 슬피 울었다.

희봉도 잘 나오지 않는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며 곡을 하는 척하였다.

"우리 집 대를 이을 자식을 낳을 수도 있었는데, 아이구, 억울하고
분해라. 이 야속하고 무정한 사람아! 나만 두고 먼저 가면 어떡하나!"

희봉이 몸부림까지 쳐대자 시녀들이 옆에서 부축을 해주어야만 하였다.

추동은 자기가 우이저를 구박한 탓에 우이저가 병을 얻어 불귀의 객이
된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가련이 우이저의 시신 곁에서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통곡하는
것을 보고는 언제 자기에 대한 가련의 사랑이 식을지 불안하기까지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