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여성채널 GTV의 엄숙PD(28)는 사내에서 "당신 정말 PD맞아요?"라는
말을 가끔 동료들로부터 듣는다.

물론 농담반 진담반이지만 겉모습만 봐서는 PD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롱다리(168cm)에 옷차림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웬만한
연예인 뺨칠 정도로 맵시 있다.

최신 유행하는 롱부츠에 미니스커트는 기본이다.

그렇다고 외적인 치장에만 열중한다고 보면 오산이다.

PD길로 들어선지 아직 4년밖에 안된 신참이지만 일욕심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

그녀가 현재 맡고 있는 프로는 "리틀조의 스타일 만들기"와 10일께부터
첫 전파를 타게 되는 "GTV 생활뉴스"등 2개.

모두 불과 10분이 되지 않는 짧은 프로지만 이를 만들기 위해 거의
하루종일을 투자한다.

편집실에서 혼자 작업을 하다보면 12시를 넘기기가 다반사다.

올핸 좋아하는 여름휴가도 다녀오지 못했다.

"새벽 3~4시에 들어가는 건 보통이에요.

어머니는 왜 이렇게 힘든 직업을 택했느냐고 걱정하시지만 그래도
주위에서 제 프로그램을 보고 재미있고 괜찮았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한 보람을 느낍니다"

성균관대에서 가정학을 전공한 그녀가 PD가 될 줄은 그녀 자신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4학년 겨울방학때 탤런트를 하던 막내동생을 따라 우연히 KBS에
놀러갔다가 한 PD로부터 방송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호기심에 아르바이트처럼 시작한 일이 지금은 직업이 돼 버린 것.일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힘들었다.

기획 촬영 편집등 방송의 모든 과정을 두루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엄PD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들인 카메라맨등 스태프들과 조화롭게
프로그램을 제작해 내는 일도 그녀의 숙제다.

"이 일을 잘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부지런하고 스스로 건강관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위의 여러사람과 함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원만한 성격과 좋은
인간성도 필수적이고요"

방송일을 하면서 그녀 자신이 생각해도 많이 변모했다는 느낌이 든다고.

대학때는 자신의 생각만 앞세워 고집세다는 말도 자주 들었지만 지금은
되도록이면 주위사람의 말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녀의 꿈은 앞으로 10년내에 세계 각지 여성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본격 여성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일이다.

카메라를 메고 촬영은 물론 기획부터 편집까지 혼자힘으로 해 볼
작정이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꿈은 PD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겁니다.

다큐멘터리는 연출자의 기획과 의도가 어떤 프로그램보다 잘 반영되는
장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기도 하고 도전하고 싶은 분야죠"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녀는 곧 카메라 공부를 따로 할 계획이다.

지난해 방황을 너무 많이해 하루빨리 안정된 모습의 30살이 되고
싶다는 그녀는 결혼계획을 묻는 질문에 "제 일을 이해해 주고 존경심이
우러나올 정도의 사람이라면 언제라도 OK"라며 웃었다.

< 김재창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