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씨로부터 돈 천 냥을 뜯어낸 희봉은 더 나아가 장화를 달래는 데
들어갈 돈도 요구하였다.

"도찰원 판관에게 돈을 먹여 장화가 무고한 것으로 한다고 해도 안심이
되지 않아요.

장화가 벌을 좀 받고 나와서는 억울하다면서 또 고소를 할 것이 뻔해요.

그 고소장이 다른 판관에게 들어가면 다시 돈을 먹여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질거란 말이에요.

그럴 바에야 장화에게 돈을 듬뿍쥐어주어서 달래놓는 것이 상책이란
말입니다.

형님,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어요?"

"그럼 아다마다.

이번에도 장화가 고소장을 써서 도찰원에 제출하기 전에 장화에게
돈을 먹였더라면 자네 집이나 우리 집이 이렇게 들볶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판관에게 먹인 돈 절반만 가지고도 장화를 달래고도 남았을 거 아냐"

우씨는 간신히 돌려놓은 희봉의 마음을 상하게하지 않으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장화를 달래는 데 적어도 삼백 냥은 들 거예요.

하지만 처음부터 삼백 냥을 다 주면 안 되겠고 백 냥씩 나누어서 주는
거예요.

그리고 영수증을 꼭 받어놓고요.

나중에 장화가 딴마음을 먹고 또 고소를 한다든지 하면 그 영수증이
장화가 우리를 여러 차례 협박하여 돈을 뜯어낸 증거가 되도록 말이에요.

장화는 노름에 빠져 늘 빚에 쪼달리고 있으니까 한번 돈맛을 들이면
계속 물고 늘어질 테지만 그 영수증이 있는 한 그놈도 우리를 함부로
들볶지는 못할 거예요.

그러니 장화를 달랠 돈 삼백 냥도 형님이 주셔야 되겠어요"

천 냥에다가 또 삼백 냥이라. 우씨는 돈 액수가 많다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그래. 삼백 냥도 마련해보지"

우씨가 머뭇거리는 말투로 대답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우씨의
아들 가용이 불쑥 끼여들었다.

"장화를 말래는 것은 제가 맡을 테니까 숙모님은 안심하세요.

삼백 냥이 들든 오백 냥이 들든 제가 알아서 할게요"

가용의 생각에는 장화를 달래는 데 오십 냥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가용의 속마음을 모를리 없는 희봉이 고함을 질렀다.

"뭐? 네가 장화를 달랜다구? 어림도 없는 소리말아. 일이 이 모양으로
된 것이 다 누구 탓인데. 다 네놈 탓이잖아. 넌 감옥에나 안 간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나 있어"

희봉이 가용의 기를 꺾어놓고 우씨에게서 삼백냥을 추가로 받아내기로
하였다.

희봉은 이 모든 일들을 대관원에 있는 우이저를 찾아가 소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배후에서 꾸민 사람이 희봉 자신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우이저는 감격하여 희봉의 인도를 받아 대부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거처를 가련 대감댁 동채로 옮겼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