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께서 인편으로 저를 찾아오시겠다는 전갈만 보냈어도 이렇게
집에서 형님을 맞는 실례는 범하지 않았을 텐데 부디 저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먼저 찾아뵙고 문안을 드리지 못한 죄도 크옵니다"

우리저가 몸둘 바를 몰라 하자 희봉이 다정하게 우이저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형님 되는 내가 진작 아우님을 찾아와봐야 하는데 집안 일들이 하도
많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되었군요. 아우님, 고생이 많지요?"

우이저는 황송해 하며 희봉을 방안으로 모셔 윗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희봉이 신방처럼 꾸며진 방안을 둘러보며, 이 방에서 남편 가련과
우이저가 벌거벗은 몸으로 뒹굴었으리라 생각하니 속으로 투기가 일어나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치미를 떼고 미소를 머금으며 우이저의 시녀가 들고 온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비천한 이 몸이 대감님의 은덕을 입어 이곳으로 온 이후로 매사에
언니와 의논을 하였는데, 이제 형님을 뵈었으니 형님이 저를 업신여기지
않고 받아주시기만 한다면 앞으로 형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우이저가 마루로 내려가 큰절을 해올리자 희봉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답례를 하였다.

"이렇게 마음씨 곱고 착한 여자를 이랑(첩)으로 들였으면서도 대감님은
왜 나에게는 숨기셨을까.

아마 대감님은 나를 강짜가 심한 여자로 여기시어 아우님 얻을 사실을
발설하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소문은 발을 다로 하루에도 수십 리 길을 내달리는 법, 아우님에
대한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도 서럽고 억울하여 많이 울었지요.

근데 아우님에게는 무슨 죄가 있겠어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감님이
아우님을 얻어 그 동안 천박한 계집들과 어울려 노는 문란한 생활을
정리하고 마음을 잡았으니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대감님이 화류계 여자들과 어울려 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나
아우님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나와 아우님은 대감님 모시는 일에 일심동체가
되어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아우님은 죄 있는 자처럼 따로 나와 살지 말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아요.

아우님이 거처할 곳은 이미 다 마련해놓았어요.

대감님이 출장을 가서 계시지 않는 사이에 아우님이 우리집으로 와서
같이 살게 된다면 대감님이 출장에서 돌아오셔서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내가 아우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강샘만 부릴 줄 알았는데 아우님과
정답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대감님이 안도의 한숨을 쉬실 거란
말이에요.

이번 일로 나도 대감님에게 인정을 받아보고 싶어요"

그러면서 희봉이 손수건으로 눈두덩을 찍어가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우이저는 희봉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을 받아 함께 흐느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