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두희씨(79)는 지난 49년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이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지난 49년 6월26일 백범을 암살한뒤 체포된 그는 같은해 8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석달만인 11월에 징역 15년으로 감형됐다.

이후 50년 6월27일 잔형집행정지처분을 받고 군에 복귀, 1년뒤 대위로
제대했다.

지난 56년에는 강원도 양구에서 축산농장을 경영해 한때 강원도에서
2번째로 세금을 많이 낼 정도로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60년 4.19이후 "김구선생 살해 진상규명 투쟁위원회"가
발족되면서 어둡고 괴로운 은둔생활이 시작됐다.

65년 곽태영씨로부터 칼로 목을 두군데나 찔렸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이후부터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서울 수유동 등지를 전전하며 철저히
숨어지냈다.

그에 대해 세상사람들이 다시 이목을 집중한 것은 지난 87년
민족정기구현회 권중희회장이 벌인 안씨피습사건.

이후 그는 권회장과 백범사상선양회 김석용회장 등의 끈질긴
설득으로 지난 92년 3.1절을 하루 앞둔 2월29일, 서울용산구 효창공원
내 김구선생의 묘소를 참배, 회한에 가득찬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범행이후 세상의 외면속에서 은둔과 참회로 얼룩진 인생을 살던
안씨는 지난해부터 중풍으로 고생하면서 외부출입을 삼가했으나 이날
결국 "피살"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 인천 = 김희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