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10개 정당-정파들은 오는 20일의 제41회 중의원선거를 앞두고
일대 난전을 벌이고 있다.

93년 선거에서 자민당의 38년 집권이 와해된 이후 네번째의 3당
연립정부 하시모토총리의 의회 해산에 따라 실시되는 이번 선거는
경제력에 걸맞지 않은 일본정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 선거는 명분상 행정개혁, 제도상으론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의
첫 실시가 특징이다.

그래서 공약에 행혁을 쳐들지 않은 정당이 하나도 없으며 비례 200석
포함, 500개 의석에 대해 입후보자가 사상 최다로 1,500명을 넘는 높은
경합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3년여동안 분당 분파를 거듭한 끝에 각 정당들은 노선조차
불분명한 지리멸렬상을 면치 못해 투표율 저조가 우려될 만큼 국민의
관심을 끄는데 무력하다.

무엇보다 추문투성이 구시대 정치인들의 몰락 이후 인물난으로 제1당
자민당을 포함, 어떤 정당도 과반의석을 확보, 단독정권을 수립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독도와 조어도의 영유를 정강으로 내세운데서
알수있듯 경제대국으로 우뚝 솟은 전후 일본의 성취를 아시아를 포용하는
세계 지도국으로 한단계 도약시킬 진정한 야망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부치는 경륜에 집권욕만 불탄 나머지 보수우익 영합에 경쟁이
뜨거워 안으로는 무책 무책임 무절조의 삼무라는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고,
밖으로는 군국일본의 악몽을 자극하고 있다.

보수 자민당에서 신진, 사키가케, 지난달엔 민주당이 연달아 분당하고
있지만 어느 신당도 개방적으로 세계조류를 향해 날개를 펴기 보다는
소애국주의적 자폐증에 빠져드는 느낌이 짙다.

게다가 사회당마저 사민으로 개명, 변질한 지금 구시대 과오청산에선
크게 후퇴, 정치 후진성을 표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지방에서 꾸준히 세를 키워오던
공산당이 이번엔 자민, 신진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321명의 후보를 내,
약진의 가능성을 과시한 점이다.

사회당 퇴조-제정파의 우경화 경향속에 이같은 일본 공산당의 세만회
기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근년 거품이 꺼지면서 위축을 겪었지만 세계속의 일본경제 위력은
막강하고 국민의 생활수준도 내실을 다져가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인구 노령화에 비례, 복지비용의 부담이 더 무거워지고
재정적자는 엄청나게 누적되는 선진국 병이 심화되는 추세다.

이 속에서도 자민당의 소비세 인상안은 오히려 강한 반발에 부닥쳐,
미국 선거처럼 재정적자 속에 감세라는 모순된 공약을 내건 정당들이
많다.

결국 만만한게 관료 때리기에 행정개혁이지만 표만 의식해 여론의
바람을 타려는 "행혁 그라이더"란 힐난을 부르고 있다.

23개 성청을 11개 또는 15개로 줄이고 행정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는
공약에 앞을 다투고 있지만, 1세기가 넘는 일본의 관료지배 전통이
쉽게 깨진다고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패전국에서 세계 제1 채권국으로 몸을 일으킨 일본이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 문화적으로 까지 부러움을 사는 대범한 이웃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