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비시장에도 유통혁명의 훈풍이 불고 있다.

대량유통체제 형성 등 유통시스템의 개선으로 유통 근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뜻하는 유통혁명은 90년대들어 할인신업태가 도입되면서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낮은 가격과 저비용, 대량 매입, 다점포 체인화를 특징으로 하는 할인
신업태가 혁명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업태의 물결, 즉 가격파괴의 바람은 소비시장의 거대한 변화와 맥을
같이 하고있다.

다시 말하면 생산자가 시장구조를 결정하던 유통시장은 소비자쪽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갔다.

이제 소비자지향의 상품과 가격 판매방식이 아니면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대량생산시대에 제조업은 유통업을 지배했고 가격결정권을 가졌다.

상품을 만들어 놓기만 하면 팔리는 공급자 우위시대였다고 할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60~70년대의 관료주도형 개발시대가 이에 해당한다.

고도성장이 계속되고 대부분의 소비재 상품이 공급초과현상을 보이면서
소품종 대량생산은 더 이상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와 취향에 부응할수 없게
됐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제조업체에 유행하면서 가격 결정권도 유통업체로
넘어오고 있다.

일물다가 현상도 결국 소비자우위시대의 부산물인 것이다.

다품종소량생산을 넘어서 개개인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 내자는
1대1 (One On One) 마케팅 개념까지 등장하는 판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과시소비"를 자제하고 상품의 가격과 품질을
함께 따지는 "가치소비"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가격파괴의 바람은 이처럼 상품가치를 스스로 판단할수 있을 정도로
현명해진 소비자들의 실용주의와 이에 부응하려는 기업의 노력에 의해
촉발됐다.

"가격파괴"란 엄밀히 말해 상품이나 서비스의 값을 내려 단순히 할인판매
하는 것과는 다르다.

생산과 유통 판매 구조 등을 근본적으로 혁신, 최소의 경비 운용으로
절감된 부분을 판매가에 반영시켜 이익률을 낮춤으로써 "항시 저가"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가격파괴란 가격결정 논리와 유통구조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이므로
이를 "가격창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격파괴 업태의 대표적 업체인 미국의 월마트는 지난 92년이후 미국
소매업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이래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유통업계도 93년의 경우 가격파괴에서 시작해 가격파괴로 끝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가격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다이에사의 "세이빙" 오렌지주스의 경우 유통업체 주도의 가격창조로 1l에
500엔에서 160엔으로 낮아지기도 했다.

일본 최대의 유통그룹인 다이에는 오는 2010년까지 일본의 상품가격을
지금의 절반수준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하는등 가격파괴의 열풍은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할인신업태의 도입은 소비자지향의 시장구조 변화라는
요인외에 유통시장 개방이라는 외적요인이 가세하고 있다.

올들어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외국의 할인점 창고형 할인매장
카테고리킬러 등과 맞대응 하기 위해선 외국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수
있는 한국형 가격파괴 업태개발이 시급했던 것이다.

지난 93년 11월 신세계백화점이 서울 창동에 디스카운트스토어(할인점)인
E마트를 세우면서부터 시작된 국내 유통업체들과 후발 대기업들의 신업태
점포개설 러시는 지칠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000년까지 전국에 세워질 대형도소매점 100여개중
절반이 신업태점포로 채워질 전망이다.

다가올 21세기에는 영세한 구멍가게와 재래시장 상가는 점점 모습을 감추고
체인화된 신업태점포들이 소매업의 총아로 각광을 받게될 것이라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