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모살미수사건 등 일제시대 검찰 수사기록, 민정사찰 정보보고
자료 2백77권이 14일 뒤늦게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아직 완전한 번역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이 자료들은 당시 경성지법
검사국이 보관해 오다가 해방후 대검 공안부가 넘겨받은 것으로 1909년
부터 1943년까지의 각종 자료들이 수록돼 있다.

이완용 모살미수사건 수사기록에는 1909년 12월20일 경성 명치정
프랑스교회앞 노상에서 암살에 가담한 이재명, 김병록의사 등 13명의
구류장, 피의자 신문조서, 참고인조서, 압수조서 등 당시 상황을 생생
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자료에 따르면 이재명 등은 프랑스교회앞길에서 벨기에 황제
추도회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이완용 당시 총리대신을 살해하기 위해
이재명이 칼로 이완용의 왼쪽어깨를 찔렀으나 미수에 그치고 이를
말리는 이완용의 인력거군 박원문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병록의사는 피고인 신문조서에서 범행동기와 관련, "미국에 있을
때 미국인들이 "너희나라는 망하고 일본이 되었다"라는 얘기를 듣고
밤새도록 울면서 국가를 강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고민을 했다"
며 "황사용, 이재명 등과 만나 미국이 부강해진 데는 생명을 바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려 우리도 생명을 바쳐 송병준,
이완용과 같은 국적을 죽이면 미국처럼 부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제에 관한 정보보고를 받은 검사국 경제계 자료에는 경기도 지역
미곡수급 상황, 쌀.잡곡 등 반입 상황표, 예정수량, 미곡 재고수량,
쌀 판매상황 등 주로 미곡수급 상황에 치중돼 있어 당시 주요한 경제
정보가 미곡과 관련된 것이었음을 가늠케 한다.

민정사찰에 관한 문서 목록중에는 국수회원 창덕궁 난입사건,
조선인 용의자수배 보고, 배재학교 및 불온학생 등 석방전후의 동정,
레닌 3주기와 소비에트 영사관의 상황에 관한 건 등이 포함돼 있어
당시 사찰이 전분야에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사상문제와 관련, 근우회, 천도교, 신간회, 조선 형평사, 프롤레
타리아 예술동맹, 혁우청년동맹, 재경변호사회, 신문.잡지기자 등의
집회, 활동 등에 대한 각 해당 경찰서장의 정보보고 자료 1백32건도
공개됐다.

검찰관계자는 "일부 자료가 이미 부식.충해 등으로 훼손된 상태여서
자료의 내용, 보존가치 등을 분석하여 마이크로 필름화하거나 영인본
으로 만들 방침이다"며 "이후 번역책자을 발간하고 검찰공보 등에
게재하거나 검찰사 편찬의 자료로 활용하고 국사편찬위원회 등 역사
연구기관 등에 참고자료로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한은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