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역사는 삼성혈의 설화에서 시작된다.

삼성혈에서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등 세 씨족의 시조가 나타난 뒤
그 자손들이 씨족연맹체를 이루어 나라를 세웠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신라의 삼국통일기에 고을나의 15세손인 고원
고청 등 삼형제가 신라에 내조하여 조공을 바치자 신라왕은 맏이에게는
성주, 둘째에게는 왕자, 막내에게는 도내라는 작호를 내려주고 국호를
탐라(섬나라라는 뜻)라고 했다고 되어 있다.

제주도를 탐라라고 부른 것은 이에서 비롯되었다.

탐라국은 498년(동성왕 20)에 백제의 속국이 되었으나 백제가 멸망한
뒤인 662년(문무왕 2)에는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

그 무렵에 세 씨족중 세력이 가장 강했던 고씨족이 군장으로 군림해
있었다.

탐라국은 고려조에 들어와서 방물을 바치고 입조를 하고 작위를
받은 것은 여전했으나 번국으로서 독립세제를 유지했다.

고려는 마침내 1105년(숙종 10)탐라국의 왕제를 폐지하고 탐라군으로
격하시킨데 이어 1153년(증종 7)에는 또다시 현으로 하행 조정되었었다.

당시에도 성주와 왕자의 관직은 남아 있었으나 상징적인 존재이었을
뿐이고 군정으로부터 파견된 현령이 실질적인 행정업무를 관장했다.

1170년(명종 1) 무신정권이 수립된뒤 신분질서의 해이와 집권자들의
토지 겁탈, 지방관의 탐학 등으로 전국 각지에서 농민과 천민의 난이
일어 났을 때 탐라에서도 1202년(신종5) 민란이 일어났다.

1211년(희종 7)에는 탐라를 제주로 개칭했다.

1270년(원중 14) 제주에 들어온 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에 전원
옥쇄한 뒤 원나라와 고려의 예속을 번갈아 겪는 수난을 격기도 했다.

조선이 건국된 뒤 현에서 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404년(태종 4)에
성주는 좌도지관, 왕자는 우도지관으로 개칭되어 존속하다가 1445년
(세종 27)에 이것마져 폐지됨으로써 탐라국의 명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1864년(고종 1)에는 전라도 관찰사의 관할하에 두어졌다가 1915년
일제 강점기에는 전라남도 제주도가 되었다.

광복후 1946년8월1일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제주도로 승격했다.

국에서 군 현 목 도로 하향 전전하던 제주가 행정구역면에서
그런대로 명예회복(?)을 한 것이라고 할까.

그것이 어제로 50돌이 되었다.

이제 제주도에는 일찌기 조선조 광해군이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를
당했을 때 "고국흥망을 물어볼 곳조차 없구나"고 탄식하던 고도의
어둠이 아니라 세계적 각광을 받는 관광중심지로 발돋움해 오고
있는 오늘이 있을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