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반은 자리에 앓고 누워서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유상련이 괘씸하기
짝이 없고 스스로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이 일을 복수한담.

설반은 유상련을 혼내줄 계략을 짜보았지만 무술이 뛰어난 유상련을
다루기가 만만치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유상련을 혼내주려다가 자칫 잘못하면 자기가 유상련에게 추태를 부린
일이 소문이 날 것이고, 그러면 혹 떼려다가 오히려 혹을 붙이는 꼴이
될 것이었다.

무엇보다 유상련이 설반 자기의 사타구니 물건을 흙탕물에 씻도록
했다는 따위의 말들을 무용담처럼 늘어 놓으며 다니면 어쩌나 노심초사
하였다.

그래서 설반은 유상련에게 복수하는 일을 계획하기보다 자기가 그냥
이 지방을 훌쩍 떠나 천하를 돌아다니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설반의 가족들은 구체적인 사정은 잘 모르는 채 유상련이 설반을
구타했다는 말만 듣고 유상련을 잡아다 관가에 넘겨야 한다고 흥분들을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유상련을 관가에 넘기면 유상련이 자초지종을 관원에게
이실직고할 것이 아닌가.

보채는 오빠 설반이 맞을 짓을 했으니까 귀공자처럼 생긴 유상련이
분을 참다 못해 주먹을 들었을 것이 아닌가 하고, 식구들을 만류하여
유상련을 잡아넣는 일만은 하지 않도록 하였다.

설반도 내심 보채의 말에 동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유상련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설반이 하인들을 시켜 확인을 해보니 과연 유상련은 장안을 떠나고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유상련이 또 방랑벽이 도져 길을 떠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설반은 자기의 보복이 무서워 유상련이 도망을 간 것으로
여기며 스스로 마음을 달래었다.

그런데 유상련이 장안을 뜨고 나서 곧이어 설반이 유상련에게 추태를
부리다가 된통 당한 일들에 관하여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소문은 과장되기 일쑤여서, 설반이 유상련의 엉덩이를 탐하다가 오히려
유상련이 설반의 엉덩이를 가지고 놀았다는 둥, 유상련이 설반을 혼내주기
위해 설반의 엉덩이에다 나무 꼬챙이를 박아 설반이 대변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둥,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유상련이 도망을 가서 속이 좀 편해졌던 설반은 그런 소문들이 퍼지자
아무래도 자기도 이 지방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집안의 점방에서 일하는 점원들이 시월이 되면 연말결산을 하고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데, 그때 장덕휘라는 점원을 따라 일단 그의 고향으로
내려가 있다가 천하유람길에 오르리라 하고 제법 장대한 계획을 세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