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련이 앞서서 걸어가고 설반이 그 뒤를 따랐는데, 아무리 걸어가도
집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희미한 달빛 아래 억새풀들이 흔들리고 있는 장소에 이르러 설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유상련에게 따졌다.

"어떻게 된거야?

산속에 있다는 집이 보이지 않잖아"

"내가 술에 취해 길을 잘못 들었나?"

유상련이 능청을 부려보며 주변의 억새풀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보태었다.

"꼭 집까지 갈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이런 데서도 얼마든지 일을 치를 수 있지 않습니까"

하긴 이런 한적한 산속이 일을 치르기에는 더 적합한 장소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이렇게 달빛도 아련히 비치고 부드러운 풀밭도 있고 억새풀은 우거겨
우리 몸을 가려주고"

설반이 더 이상 참기가 힘들다는 듯이 유상련을 뒤로 덥썩 안으며
허겁지겁 애무하기 시작했다.

유상련이 설반의 애무를 받아주는 척하며 신음소리를 가늘게 내자 설반은
더욱 흥분하여 유상련의 바지를 벗기려 하였다.

유상련은 설반의 사타구니가 부풀 대로 부풀어 있는 것을 엉덩이께로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다가는 일을 당할지도 몰라.

유상련이 이제 결심을 한 듯 홱 몸을 돌려 설반의 면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설반은 유상련의 주먹 한방에 나자빠지고 말았다.

"나를 뭐로 알고 이런 추태를 부리느냐?"

설반에게 깍듯이 높임말을 쓰던 유상련이 두눈을 부릅뜨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바로 옆에 서 있는 나무가지 하나를 꺾어 손에 들고는 설반의
등을 후려갈겼다.

"아이쿠, 이놈이 나를 쳐?

나를 꼬드겨놓고는 사람 죽이는구나"

"누가 누구를 꼬드겼다고 그러느냐.

이 천하에 추잡한 놈, 어디 자지를 휘두를 데가 없어서 같은 남자
엉덩이에다 대고 휘두르느냐.

이놈, 오늘 맛 좀 봐라"

유상련이 나무가지를 또 치켜들자 그제야 설반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상련이, 왜 이러나.

상련이도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상련이도 남색을 즐긴다는 소문도 들었고 말이야"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듣고 헛물을 켜려고 하느냐.

오늘 네놈의 그 못된 버릇을 고쳐놓겠다.

자, 옷을 다 벗어.

그렇지 않으면 이 나무로 후려칠 테니까"

"자, 자, 잠깐.

옷을벗을 테니까 제발 때리지는 마"

설반이 울상을 지으며 허둥지둥 옷을 벗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