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룬디는 북으로 르완다,동 으로 탄자니아, 서로 자이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앙아프리카의 동부고원에 있는 저개발국가다.

면적 2만7,834평방킬러미터에 600만명의 인구가 산다.

종족의 구성은 후투족 80%, 투치족 15%, 투오족 1%다.

그 지역의 원주민은 피그미계의 투오족이었다.

11세기 초에는 반투계의 후투족이 이주해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뒤 13세기께 키가 크고 호전적이고 유목민인 투치족이 에티오피아와
우간다로부터 남하해 와 14~15세기에 왕국을 세웠다.

부룬디왕국은 1885년의 콩고분지조약에 의해 90년부터 독일령
동아프리카에 편입되어 보호령이 되었다.

1차세계대전 뒤에는 벨기에 통치하의 국제연맹 신탁통치령이 되었다가
2차대전 뒤에는 유엔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1957년부터 루안다-우룬디 민족독립운동이 일어난 뒤 루안다에서는
다수인 후투족이 폭동을 일으켜 소수인 투치족의 왕을 추방하고 61년
공화정을 선포했다.

반면 우룬디는 62년 므와미 므왐부차4세를 옹립하여 입헌군주국
부룬디로 독립했다.

1966년에는 은타레5세가 그의 아버지인 므왐부차4세를 밀어내고
등극했으나 총리인 미셸 미콤베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제를 선포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투치족이 지배층이었던 부룬디는 72~73년 아프리카
최악의 종족분쟁에 휘말려 들었다.

국외 망명 후투족의 침공으로 내란이 일어나 후투족이 15만명, 투치족이
10만명이나 무차별 학살되었다.

1976년에는 역시 투치족인 장바프티스트 바가자 중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헌정을 중단시키고 대통령이 되어 독재정치를 해오다가 87년 피에르
부요야 소령의 쿠데타에 의해 쫓겨났다.

부요야의 투치족 정권은 종족 화해와 민주 개혁을 추진했다.

1993년 사상 첫 민주적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어 후투족의 멜시오르
은다다예가 당선되었으나 투치족의 쿠데타 시도때 피살되었다.

94년의 선거에서 당선된 후투족의 시프리엔 은타르야미라 대통령도
탑승 항공기 피격으로 사망했고 그뒤를 이은 후투족의 실베스트르
은티반퉁가냐 대통령도 이번 투치족 군부 쿠데타로 밀려나고 부요야
정권이 재등장했다.

93년 은다다예 피살 이후 투치족 정부군과 후투족 반군간의
보복살륙전으로 15만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보면 앞날의 참상이
끔찍스럽기만 하다.

가장 잔인한 것이 인간의 인종적 편견임을 실감하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