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들의 깃발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휘날리고 있다.

세계화 물결속에서 한국의 역군들은 건설뿐만이 아니라 광산 삼림 등
자원개발을 위해 머나먼 땅끝까지 진출했다.

온갖 역경을 딛고 오지에서 조국을 위해 땀흘리는 사람들.

그 첫번째로 방글라데시에서 교량을 건설하고 있는 현대건설 현장을
찾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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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역사를 만든다.

방글라데시 건국 이래 최대 역사인 자무나강 교량건설.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이를 두고 "세계 최빈국"이란 오명을 벗겨내면서
이 나라에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줄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무나 다목적 교량"은 홍수의 나라 방글라데시의 동과 서를 최초로
연결, 국토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할 "방글라데시판 경부고속도로"인
셈이다.

우리에겐 먼 곳으로만 여겨졌던 이 오지에서 현대건설(주)이 땀과
지혜를 쏟아 새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이 공사의 주요 두 거점은 수도 다카 북서쪽 140km 떨어진 탕가일 근처의
교량건설 현장과 이 곳에 자재를 공급하는 젖줄격인 몽글라항.

다카에서 서남쪽으로 300km 떨어진 몽글라항까지는 차량으로 무려
10시간이 걸렸다.

차창밖 도로변에는 사람만큼이나 깡마른 가축들이 오갔고 그 뒤 흙탕물
웅덩이에선 반라의 남녀노소가 수영과 빨래, 세면에 조리까지 하는 광경들이
스쳐갔다.

1인당GNP 235달러인 방글라데시가 보여주는 "가난"의 단면이었다.

다리가 없는 자무나강에 도착해선 2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페리로 건너야
했다.

한마디로 사회간접자본의 부재였다.

몽글라항에선 교량건설에 필요한 수입 철근 시멘트 파일(철심)등이
현대가 자체 제작한 자항바지선에 적재되고 있었다.

자재를 실은 바지선이 물길 400km를 거슬러 공사현장까지 가는 일이
가장 힘겨운 작업이다.

하상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수백t의 자재를 실은 자항선은 번번이
강바닥에 걸려 멈춰서는 것이다.

때문에 구간별 수심에 정통한 현지전문가 8명을 동원해도 빨라야
닷새이상 걸려야 현장에 도착한다.

이 때문에 김영배현장소장의 하루 일과는 "자재가 이상없이 도착했는가"
라는 물음으로 시작된다.

자무나대교 공사현장에선 지반을 흔들며 "쿵쿵"거리는 굉음소리가
요란했다.

교각을 떠받치는 파일(철심)121개를 박는 작업이 마무리 공정에
접어들었고 다음 단계인 파일캡 설치작업도 일부 착수됐다.

공사 진척도는 7월현재 전공정의 약 55%선.

두꺼운 퇴적층의 하상을 뚫고 암반까지 길이 80여m의 파일을 배 위에
설치된 "거대한 해머"로 손상없이 두드려 박는 이 작업은 세계 지반업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파일 설치작업이 끝나면 그 위에 파일캡을 씌운 뒤 교각을 세우고
상판격인 "세그먼트"구조물을 양쪽으로 붙여 나가면서 교량을 설치하게
된다.

이른바 "FCM공법"을 채택한 이 다리의 길이는 무려 4.8km.

강에 설치하는 다리로는 세계 최대규모다.

현대는 방글라데시 정부가 발주한 이 공사를 지난 94년 5월, 유럽과
일본의 경쟁업체들을 누르고 2억5,000만달러에 설계 및 시공을 책임지는
턴키방식으로 수주했다.

공사대금은 방글라데시 정부및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등 국제기구가
공동으로 지원한다.

교량이 완공되는 내년말쯤엔 강을 건너기 위해 때때로 3일씩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겪지 않게 될 것이다.

또 교량 위에 철로 가스관 송전탑 등도 부설되기 때문에 동부의 철도
전력 가스 통신망과 서부의 농산물이 손쉽게 교역된다.

이렇게 되면 홍수기를 이용해 막대한 독점적 부를 챙겼던 중간유통업자들의
폐해가 사라지고 부의 재편과 함께 서부지역 주민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증대될 것이라는게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칼레다 지하 전총리가 수차례 현장을 방문, 공기단축을 독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사의 중대성 못지않게 힘겨운 문제들이 많다"고 김철호 공사부장은
말한다.

공사의 기술적 어려움은 차치하고 한낮 4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
국토의 80%가 물에 잠기는 대홍수, 창궐하는 풍토병과 전염병 등이
근로자들을 위협한다.

정치권과 연계된 노동자들의 파업 및 도로 항만 봉쇄, 현지주민들의
현장진입과 하상토지관련 소송, 관료들의 부패로 인한 통관지연 등도
넘어야 할 장벽이다.

그러나 이런 난관들은 현대 특유의 돌파력 앞에 무너진다.

공사에 투입된 100여명의 한국인들은 아침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영국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1,600여명의 외국근로자들을
지휘한다.

교량뿐 아니라 우리의 "근면성"까지 이 오지에 이식하고자 하는
사명감에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