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섭 <숭실대 교수 / 무역학>

왜 우리의 땅값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까지 올라가게 되었는가.

"고비용.저효율"구조에서 고비용의 밑바탕에는 비싼 땅값이 자리잡고
있다.

땅이 비싸니 임대료가 비싸고 그러니 물가가 비싸진다.

주거비용도 올라가고 임금도 더 줘야 한다.

생산비용이 비싸니 자연 제품 출하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국토가 좁다는 것이 원인이 되기는 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경제개발과정이 땅값상승을 조장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과거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은 가장 분명한
장기저축의 수단이었다.

물론 아들 딸 공부시키기 위해 땅을 파는 일도 있었으나 여유돈이
생기면 장기저축의 방편으로 누구나 부동산을 사두었다.

기업도 투자하기 위해 부동산을 파는 일이 있었지만 영업이익을 남기면
땅을 잡아두었다.

한참 시일이 흐른 뒤에 기업의 영업은 망했어도 땅을 넓게 잡아둔 덕에
기업주는 살아남게 된 예가 얼마든지 있다.

이것은 부동산에 투자해둔 경우 그 투자수익률이 높았음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부동산에 대한 세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는 고도성장 경제가 땅값 상승을 지탱하고 있었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과 부동산에 대한 낮은
세율이 결합하여 "토지신화"를 낳았던 것이다.

부동산 투자수익률이 높았다는 사실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 효과는 부동산이 경제에 유효한 장기저축 수단이 되었다는
점이다.

인플레가 높았던 시기에 부동산에 비견할 만한 저축수단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은행저축은 부동산을 사기 위한 방편이었지 은행에 장기저축을 해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금 들어 목돈 생기면 사채놀이하고 그러다 은행대출 받아 이를 합해
아파트나 나대지 등 부동산을 구입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재산형성행위가 사회의 높은 저축률을 낳을수 있었다.

사람들은 부동산투자의 높은 수익률에 매료되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렸던 것이다.

아파트 없는 사람은 아파트 사려고,아파트 산 사람은 평수를 늘리려고,
돈 있는 사람은 상가 나대지 임야를 사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소비를
참았던 것이다.

이렇게 모인 재원이 산업화에 필요한 투자자금의 재원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부동산이 국민저축을 유도할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투자수익률을
보장하였다는 점도 또한 엄청난 부작용을 낳았다.

우선 불공평한 소득분배 구조를 낳았다.

열심히 일했어도 부동산이 없으면 가난할 수밖에 없다.

빈둥거리고 놀았어도 부동산만 있으면 부자가 될수 있었다.

이것은 시장이 밖으로 급속히 팽창하고 산업의 수익률이 높은 고도성장
경제에서만 용인될 수 있는 소득배분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이런 소득분배 메커니즘으로 기술개발이나 경영합리화와 같은
내실화를 통해 성장의 원천을 갖는 경제프로세스를 낳을 수는 없다.

높은 부동산 수익률로 인하여 나타난 다른 부작용은 고지가 현상이다.

80년대후반 이래로 노동력도 부족한 단계로 들어섰다.

이제 외국인 노동자를 써야하고 노동력이 부족해 기업이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높은 땅값,그로 인한 생계비및 생산원가 상승,
그리고 노동력 부족및 임금상승으로 인해 경제의 자원동원능력은 완전히
한계에 다다랐다.

따라서 해외시장의 수출수요증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경제성장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고갈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경제성장이 더이상 외적 수요팽창과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자원동원으로 추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제 경제성장의 원천은 이미 포화상태로 고용된 자원을 사용함에 있어
자원의 내용을 고급화하고 그 질적 향상을 도모하여 부가가치를 높이고,
나아가 조직의 효율성을 향상하며, 체제 전체적으로는 시장메커니즘을
확장함으로써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즉 내실화를 통해 성장의 원천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부동산을 통해 저축을 유도하는 지금까지의 자원동원 메커니즘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행히 토지.금융실명제로 이 메커니즘을 단절할 단초는 마련되었다.

이 단절과정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물가안정이 정착돼야 하고 단순화되고
일관된 체계를 가지며 새로운 경제질서의 패러다임을 만들 세제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을 대체할 새로운 자원동원 메커니즘이 아직 출현하지
않고 있다.

최근 과소비 현상과 관련해 새로운 자원동원 메커니즘의 부재를 탓하는
주장도 있다.

그것은 어떤 메커니즘일 것인가.

새로운 메커니즘은 국민의 저축심리를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금융상품의
출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첫째 "제로"의 물가상승률이 달성되어야 한다.

둘째 금융산업 규제개혁을 통하여 다양한 금융기관과 금융상품이 출현하여
이들의 자유분방한 영업활동이 저축유발의 주체가 되도록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바로 이런 조치들이 고비용 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물론 저효율구조를 변화시키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노동이 피동적 역할을 수행하는 인력으로 인식되지 않고 지력을 가진
능동적 주체로 인식되는 새로운 노사관계가 정착돼야 한다.

교육개혁 사법개혁 행정규제 개혁이 과감히 추진되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