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의 몸이 이제는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이자 언홍은 점점 갈등에
빠져들었다.

이팔 청춘에 남자의 몸을 경험하고 나서 전신의 성감대가 활짝 피어날
대로 피어난 엉홍은 가사가 껴안고 손장난 정도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만족을 할 수 없었다.

가사가 그러면 그럴수록 언홍은 은연중에 다른 남자의 몸을 원하고
있었다.

그런 생활이 몇 달 계속되다 언홍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여러 의원들이 와서 진맥을 해보고 약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형부인은 언홍이 왜 앓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만하여, 그러면 그렇지,
하며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가사의 아들 가련도 어머니 형부인이 암시하는 말들을 통하여,그 리고
자신의 직감으로 언홍의 발병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련은 병문안을 핑계삼아 가사가 없는 틈을 타서 언홍의 방을 종종
들락거렸다.

언홍이 자기 아버지의 첩으로 들어올 때부터 언홍의 몸매와 미모에
반해 있던 가련은 이제 기회를 만난 듯이 슬슬 언홍을 유혹하려고 하였다.

가사가 손사막 이야기를 들려준 의원의 말대로 성적인 것들에 대해
초연해지기 위해 도교를 한번 믿어볼까 하고 오대산에 사는 어느 유명한
도인을 만나러 간 사이에, 마침내 가련이 언홍을 겁탈하다시피 그 몸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 일은 언홍의 방 바로 바깥에 있는 시녀들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치러졌는데, 그것은 가련이 언홍의 치마 속으로 손을 밀어넣어
언홍을 잔뜩 흥분시킨 후 자기도 옷을 그대로 입은 채로 그 부분만
내어놓고 슬그머니 언홍을 올라탔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언홍은 처음에는 입을 악 다물고 가련을 밀어내려고 하였지만 이미
모든 세포가 남자의 몸을 향해 열려있는데 자기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 거짓말처럼 언홍의 몸이 나아졌으니 신통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가사가 오대산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언홍은 아버지와 아들
둘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가사는 도교의 영향 때문인지 언홍을 그렇게 괴롭히지는 않고 편하게
안고 자기만 했고, 가사의 포옹으로 은근히 달아오른 언홍의 몸속으로는
가련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 위험한 행각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가련의 아내 희봉이 눈치를 챘을 무렵, 언홍은 그 사실을 알고 분란이
일어나기 전에 보옥의 거처인 이홍원 근방 소산 기슭의 우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다.

가련은 자기의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바람에 벌써 두 여자로 하여금
자살을 하도록 한 셈이었다.

이런 과정들을 세세히 이야기 하려면 낙양성 둘레 만한 종이가 있어도
부족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