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내주에 여-야 영수회담 개최가 예고되니 침체됐던 분위기가 다소
고양됨은 당연하나 그렇다고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다.

국민이 냉담한 이유야 원근으로 한두가지 아니겠으나 무엇보다 가깝게
총선직후 영수회담의 전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과반 의석에 실패한 여측 제의로 의외의 발빠른 대좌가 이뤄지자 이젠
정치가 좀 달라지려나보다 하는 희망적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그 기대는 너무 빨리, 무참히도 무너졌다.

대화정치와는 정반대로 정국은 이내 경색으로 치달아 새 국회를 개원만
하는 데도 그 난리를 치렀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제기된 배경서부터 당면한 내외 여건에 이르기까지
먼저번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우선 진통끝에 국회가 열린 뒤 김영삼 대통령의 자세변화를 읽을수 있다.

의장단 상임위원장단 그리고 지방의회 의장단 등과 일련의 회동이 진행중
이다.

영수회담도 비록 일정은 뒤로 잡혔지만, 분위기 조성을 위해선 3당대표
연설을 끝내는 등 차분한 준비가 오히려 바람직하다.

이를 즉흥적 발상이라 볼수는 없다.

2년 안쪽 잔여 임기를 바라보는 김대통령으로서 향후 국회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시정방향은 어떤 쪽으로 조정할 것인가, 나아가 그렇게 하는 정치
스타일은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가에 검토를 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설령 그 과정서 심경의 변화가 있은들 이상할건 없다.

바라건대 이번 영수회담에선 초청자인 김대통령은 물론 김대중 김종필총재
3자 모두가 이 시대를 풍미한 거두답게, 또 소탐대실하지 말고 금도를 펴길
진언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70년대초 40대기수를 자타 공칭, 이 나라 정치 사회 어느 한곳도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3김, 그들이다.

최소 30년의 산전수전 정치경력 위에 이젠 불혹을 30년 뒤로한 고희의
인생역정에 선 그들이니 만큼 무엇보다 남다른 덕목은 인간 유한성에 대한
지각이며, 거기 맞추어 자아욕구를 몸소 조절하는 지혜라 믿는다.

나라 안팎을 보더라도 3김의 그런 수범이 어느때보다 절절히 요구되는
시기다.

하나같이 3자 모두가 청운의 뜻을 자신이 펴야만 만족함은 결국 개인에도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아집인 것이다.

어떤 민주 국가라도 보라.

두세번의 집권 시도는 있어도 30년 막무가내로 거기 집착하는 예란 없다.

만일 이 한가지 철리에 눈을 뜨고 과감히 결심을 굳힌다면 내주 3영수
회담이야 말로 한국 정치의 기념비적 사건이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만 된다면 누가 시시콜콜 밤놔라 대추놔라 하지 않아도 무엇을
의논하고 의견을 모아가야 옳은지 그들 자신이 너무나 잘 안다.

그들만큼 머리로 알뿐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정치가도 드물 것이다.

되도록이면 칼자루를 쥔 쪽에서 과감한 제의, 양보를 전제로 한 제안을
하는 편이 효과적임은 말할 나위 없다.

한반도 문제에서 발상 전환적 제의를 하고 합의하는 일도 기대된다.

하지만 딱히 세상을 깜짝 놀라켜야 좋은건 아니다.

아주 작고 가까운 일이라도 합의하고 실천해내면 그게 바른 시작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