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중 < 현대자동차 부사장 >

이달들어 파국으로 치달을 듯 했던 노사문제가 다소 진정되고 있다고
하니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 노사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의식, 교섭관행으로는 도저히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노조는 소속사업장의 경영성과니 생산성을 훨씨 상회하는 요구를
해왔고, 일단 요구가 된 연후에는 그 내용의 타당성, 합리성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집단의 힘을 빌어 물리적으로 밀어부쳐 왔다.

타회사 보다 많이 얻어내야 만족하고,타협보다는 투쟁을 보여줘야만
훌륭한 지도자로 인정받는 풍토가 일반화 되어 버렸다.

한편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분규로 인한 생산차질 보다는 분규의 폐해가
미치는 국가경제적, 사회적 영향을 우려하여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 결과 87년 이후 지금까지의 연평균 임금 상승률이 15.4%인데 반해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1.3%에 그쳤꼬 기업경쟁력, 국가경쟁력의 상실이란
후유증을 남겼다.

결국 경쟁력이나 자본이 취약한 업종과 기업은 후발국에 시장을 잠식당하고
도산해 보리는 냉엄한 현실로 이어졌다.

바야흐로 세계는 경쟁력을 바탕으로한 경제전쟁 체제로 재편돼 있으며,
우리는 해외시장뿐 아니라 국내시장에서도 해외 기업들과 무차별적 경쟁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자기몫만 늘리기 위해 제로 섬의 투쟁만 계속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많지 않다.

오늘날 선진국의 노사관계를 볼때 일본은 일찌기 60년대 초부터 노사가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합심해 오고 있고, 미국노동자들이 경쟁력 회복을 위해
노사협조와 협력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시아 경쟁국들이 노사관계가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제 우리는 무제한적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태를 벗어던지고,
새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해야 한다.

우선 노동조합은 그 조직력과 통제력을 노사공동 발전을 기할 수 있는
생산적인 역할에 쏟아야 한다.

노조 리더들은 정치적 입지나 인기에 연연한 무리한 요구와 행위는
그 폐해를 결국 소속 조합원을 포함한 국민모두가 나누어 가진다는 점을
인식하고, 시대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조합원들을 바르게 설득하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야 한다.

아울러 국민경제적 안목에서 조합원들의 의식을 선도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품질향상, 생산성 향상에 앞장서야 한다.

근로자들 또한 무리한 요구가 단기적으로는 달콤한 지 모르지만 중장기적
으로는 기업경영에 부담을 주어 원가상승 ->경쟁력 약화 ->판매부진
->재고누적 ->조업감축 ->조업중단으로 이어지는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기업이 도시하여 문을 닫고난 후에는 이미 때는 늦어 희생을 위한 어떤한
노력도, 협력도 의미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실종된 근로윤리를 되살려야 하는 점이다.

그러나 돈은 많이 받고, 일은 적당하게 하고, 어려운 일은 싫고, 책임은
당신이 다 지고, 하는 정신으로는 경쟁할 수가 없다.

성숙한 책임의식이 요구되는 실종된 근로윤리를 되찾는 것은 이제 전적으로
우리 근로자들 몫이다.

경영자들은 지금까지의 바람직하지 않은 노사관행이 이루어져 온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근로자들의 이해와 믿음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신뢰의 바탕위에 근로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협력을 이끌어내
경쟁력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

나아가 인간중심의 경영으로 근로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정치, 사회지도층 역시 21C를 향한 새로운 비젼을 앞서 제시하고 솔선수범
해야 한다.

성장논리에 의거, 앞만 보고 달려오는 과정에서 우리사회의 비리, 부조리
등 구조적 모순이 근로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근로의욕을 꺽어 버리는
주된 이유중 하나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발생원인, 이유를 불문하고 바로 잡아야 할 주체는 역시 사회지도층
인사들인 바, 일신우일신하는 자세로 모든 국민의 역량을 한군데로 결집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