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행정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비리 사건을 계기로 재경원은 제도개선반을, 증감원은 실무작업반을
구성하는 등 파장의 진화에 나서고도 있다.

증권시장에 걸린 이해 관계가 복잡하다 보니 벌써부터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주의들도 쏟아지고 있다.

12일엔 재경원에서 증감원 관계자들과 재경원 관계자, 민간 전문가들이
첫 합동 모임을 갖고 증권제도 개혁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와 일정을 토론
하는등 일견 활발한 개혁 작업에 나서 있다.

정부와 증감원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개혁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니
일면 적지 않은 기대도 갖게 된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부문별로 작성해왔던 신증권정책을 포장만 그럴듯하게
만들어 홍보용으로 내놓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증권 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증권시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이 과연 정부에서 나와질까 하는데는 근본적인 회의도 있다.

한국증시의 비효율구조에는 정부의 시장개입도 큰몫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부가 만드는 제도 개선안에 새로운 것이 없을 것임도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증권행정의 개혁은 재경원이 증권행정에서 손을 떼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증권시장은 말그대로 시장이기 때문에 당초부터 정부가 개입하고 간섭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은 옳다.

다만 불공정 거래를 감시하고 유가증권의 적정성을 평가하는데는 공적인
권위가 필요하고 그래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장으로 구성되는 증권관리
위원회를 두게 된다.

문제는 이 증권관리위원회가 하나의 통과의례로 전락해 있다는 점이다.

증권비리 사건이 터진 이후 처음 개최된 12일의 증관위에서조차 결정되고
논의된 것은 동서증권 임원의 유가증권 매매승인등 사소한 4건의 규정이었을
뿐 최근의 사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게 정부의 발표지만 증권규정의
대부분은 증관위가 결정해야 할 증관위 규정이라는 사실을 증관위원들
스스로가 잊고 있다는 애기도 되겠다.

결국 정부가 간섭하고 증관위는 시녀로 전락한 상태에서 증권감독원의
임직원들은 하나의 기생적 존재 보조적 존재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게
되고 이같은 환경하에서 유혹과 부패의 매커니즘이 작동하게 된 것이다.

예를들어 기업공개같은 이해의 조정은 물론 증권사에 대한 시시콜콜한
검사업무에 이르기까지 재경원에 사전보고하고 결제를 받는 상황이라면
증권행정의 투명성은 이미 기대하기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만다.

증권비리의 척결이 단순히 직원들에 대한 윤리교육과 가차없는 사정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뇌물사건을 빌미로 증감원의 고유기능을 축소시키는등은 결과적으로
재경원의 보다 은밀한 통제만을 정당화시키는 부작용을 배태할 것이다.

예를들어 기업공개 순위를 업계에서 자율로 결정토록 하는 것은 업자들에
대한 재경원의 은밀하고도 불법적인 개입만을 불러올 것이다.

증권행정 바로 세우기는 증관위의 기능을 바로 세우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원칙에도 맞다는 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증관위의 기능을 정상화하겠다는 신임원장의 언급은 그런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정규재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