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대국회 개원전부터 야당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개탄스런 일이다"

재야출신인 신한국당의 이신범당선자(46.서울강서을)는 "국회가 상시 열려
있어야지 개회일수를 법으로 정해놓은 것은 문제"라며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보려는 의욕을 앞세웠다.

이당선자는 14대 총선때 서울강남을에서 신정당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험이 있어 국회에서의 일욕심이 더 많아 보였다.

이당선자는 "정치란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며 "이런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언로를 개방하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정당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당선자는 "정치성이 약한 사안에 대해서는 자유투표가 이뤄져야 한다"며
"다만 정당정치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개인의견만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투명한 당론결집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당선자는 지난70년 서울대법대 재학시절 3선개헌반대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제적된 학생들을 복학시키려다 반공법위반혐의로 구속됐었으며
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80년 김대중씨 내란음모사건등으로 5년5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당선자는 83년부터 군사정부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머물다 87년
귀국, 당시 김영삼통일민주당총재와 인연을 맺었으나 3당합당이후에는 노선
을 달리해 김동길씨등과 새로운 정당을 결성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92년 대통령선거때는 개인신분으로 김영삼후보의 막후참모역할을
했다.

이당선자는 "군사독재시절엔 민주화가 시대적 대의였다면 이젠 환경 복지등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삶의 질향상에 노력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이당선자는 "정치권
에도 이젠 품질경쟁의 시대가 왔다"며 "생활정치를 준비하는 정책전문가로
인정받고 싶다"고 밝혔다.

< 김호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