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소비재 상표의 하나이자 성공의 상징인 소니사는 15일 창사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지난해 결산에서 다시 건재를 과시했으나 전후 일본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소니는 지난 3월로 마감된 "95 회계연도 매출이 전년에 비해 15.1% 늘어난
4조5천9백20억엔으로 증가함으로써 세전 수익이 전년의 2천2백9억5천만엔의
적자에서 1천3백81억6천만엔(13억달러)의 흑자로 돌아섰다고 발표했다.

소니는 현회계연도 사업이 매출 5조엔에 세전 수익 1천9백50억엔으로 더욱
호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특출한 소니사는 지난 46년 38세의 엔지니어 이부카 마사루와
사케 판매상의 야심찬 아들 모리타 아키오가 5백달러 상당의 돈으로 연합군
의 폭격이 비켜간한 백화점에 "도쿄통신공업"이라는 매장을 내면서 출발
했다.

이들의 첫 히트작은 녹음테이프의 전신인 자석식 테이프의 개발이었으나
이들이 본격적으로 성공가도에 들어선 것은 52년 미국 발명품인 트랜지스터
의 제작권을 사들이면서부터다.

3년후 이들은 현재의 수준으로 볼 때 거대한 규모이나 당시 미국의 라디오
를 공룡처럼 커보이도록 만든 휴대용 라디오 TR-55를 출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연이어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왔음직한 절묘한 전자제품들을
내놓음으로써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이부카의 개인비서를 지내다 은퇴한 쿠라타 유코씨는 "이부카씨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TR-55였다고 전하며 "그는 미국이 방위산업
우선 정책을 지향한 반면 일본은 소비재 생산국중 선도국가가 되기를 희망
했다"고 밝혔다.

이부카와 모리타는 회사명이 세계시장 공략용으로서는 너무 거추장스런
것으로 판단, 58년 드디어 소리를 뜻하는 라틴어 sonus와 당시 미국에서
명랑한 성격을 지칭하던 유행어 sonny를 결합해 소니(sony)로 바꿨다.

그후 소니라는 이름 아래 TV 수상기, 하이파이 장비, 비디오 카메라, CD
플레이어, 워크맨 등 소형 전자제품이 대거 쏟아져 나왔으며 특히 소니
워크맨은 지난 79년 출시 이래 일반명사가 되다시피하며 거액을 벌어들였다.

한편 소니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소니가 새 아이디어를 내놓기보다는 남의
아이디어를 취득, 개발해 왔으며 해외 시장에서 완전지배를 위한 무자비한
전략을 구사해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니는 해외생산에 선구적으로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생산라인을 비용이
많이 드는 일본에서 해외로 대규모 이동시키는데 시기를 놓쳤으며 비디오
카세트나 비디오디스크의 표준형 채택에 실수를 범하는 실패도 기록했다.

또한 소니사가 하드웨어 생산에 그치지 않고 할리우드의 컬럼비아영화사를
매입하는 한편 산하 "소니 뮤직"경영을 통해 영화와 음악의 소프트웨어까지
장악하려든 시도도 커다란 적자를 안겨줬을 뿐만 아니라 윤리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소니는 수개월내 미국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할 예정인데 이미 거대
기업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컴퓨터 시장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 도쿄 = 이봉구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