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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매수합병] (중개기관) 기타기관..은행등도 전담팀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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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종합금융회사 회계법인 법률사무소도 전담팀을 발족시켜 경쟁적으로
    M&A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M&A전담팀을 두고 있는 은행은 중소기업은행 한국산업은행 장기신용은행
    국민은행 제일은행 조흥은행등 6곳에 이른다.

    2~4명으로 구성, 전부 올해 전담반이 만들어졌다.

    은행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차별화전략으로 M&A가 자연스레 부각됐다.

    은행M&A팀의 강점은 풍부한 자금력이 뒷받침된다는것.

    업무상 많은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자료를 축적하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산업구조조정이나 경제적 순기능을 극대화시키는 차원에서 M&A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M&A부티크와는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것이 은행M&A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한국산업은행은 89년 해외투자업무와 관련해 본격적으로 M&A업무를
    시작했다.

    부실기업 처리문제를 예전에는 청산 성업공사이관 법정관리등으로
    풀었지만 최근에는 M&A차원에서 접근하고있다.

    미국 M&A시장을 JP모건,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 자금력이
    우수한 투자은행이 이끌고 있는 것처럼 산업은행은 투자은행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M&A파이낸스에 중점을 둔다.

    자본시장운용팀내에 4명으로 구성된 M&A전담반이 설치돼 있다.

    국민은행은 중소기업팀내 3명으로 구성된 M&A전담반을 설치하고 이달부터
    본격영업을 시작했다.

    수수료없이 M&A중개를 하고 법률.회계전문가를 알선해주는 역할도
    할 예정이다.

    제일은행은 국제금융부내에 4명으로 구성된 M&A팀을 설치, 국제간M&A에
    주력하고 있다.

    제일은행은 대우 대신 현대증권등과 M&A업무특약을 맺고있다.

    중소기업은행과 장기신용은행도 올해초부터 M&A업무를 시작했다.

    종금사는 M&A가 고유업무여서 따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이유로
    일찍부터 M&A업무에 손을 댔다.

    한국종금 한외종금 새한종금등이 M&A팀을 두고 있다.

    한국종금은 76년 회사설립 이후부터 해외투자자를 위한 자문업무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중개업무는 90년부터 시작해 대구의 성림상호신용금고에 대한
    M&A를 주선, 국내 처음으로 중개기관에 의한 M&A를 성사시켰다.

    90년이후 20여건의 M&A를 성사시켰다.

    한국M&A의 권성문사장을 비롯 많은 전문가들이 이곳에서 실무를 익혔다.

    94년에는 국내최초로 M&A정보현상금인 파인더스 피( Finder"s Fee )를
    도입하는등 활발히 참여하고있다.

    한외종금과 새한종금은 한국종금보다는 활동이 미약하다.

    법률회사들도 자연스럽게 M&A업무에 참여하고 있다.

    M&A가 처음부터 끝까지 법률행위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적대적인 M&A에 있어서는 법률적인 대응이 가장 중요한 전략이기
    때문에 법률전문가의 중요성이 커진다.

    M&A업무를 하는 대표적인 법률회사는 김&장법률사무소와 한미합동법률
    사무소.

    코오롱-효성간의 한국카프로락탐분쟁, 신원의 제일물산인수등에 개입했다.

    안건 삼일 세동회계법인등 회계법인들은 전담팀구성등을 통해 M&A에
    참여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이 한국산업은행과 업무협조를 맺고 있는등 이들은 대개
    전문M&A기관과 연계해 회계자문 기업실사 세무자문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의 자회사인 한국기업평가도 국내3개신용평가회사중
    유일하게 M&A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M&A과정중 기업실사에 관한 업무를 하고 있다.

    < 백광엽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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