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중인 서주산업이 법원의 허가없이 322억원의 어음을 불법 발행한
사건은 법정관리 제도및 그 운용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다.

역시 법정관리중이던 논노가 부도를 내 그 채권자들이 "법원을 상대로한
소송"을 제기하는 보기 드문 일이 빚어진지 불과 1개월여만에 또 서주산업
사건이 발생, 허점투성이인 법정관리의 문제점이 드러난 셈이다.

행정력에 의한 부실기업 정리방식은 시대상황이 달라져 이제 어려워졌고,
따라서 법정관리제도의 건전하고 효율적인 운용은 더욱 긴요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서주사건은 특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법정관리는 한마디로 은행등 채권자의 희생이 있더라도 꼭 살려야할 기업을
살리기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채무를 동결, 법정관리가 끝날 때까지 파격적으로 낮은 금리를 적용
하는 대신 경영관리는 부실을 가져온 기존 대주주가 아닌 법원이 정한
관리인에게 맡기게 돼 있다.

은행등 채권자의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기업이 정상화되어 법정관리가 끝나
기업난 뒤에도 부실에 책임이 있는 법정관리 이전의 대주주 및 경영권자는
임원이 될수 없도록 회사정리법은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법정관리가 악덕 기업주의 재산보전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같은 실정법상의 명문 조항에도 불구하고 법정관리기업의 경영권은
실질적으로 법정관리 이전의 대주주가 행사하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법원허가없이 어음을 발행, 그 돈을 선거자금으로 유출한것 아니냐는
추측이 돌고 있는 서주산업의 경우 곧 당국의 조사가 있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법정관리인의 행위는 명백한 배임이고, 그같은 법정관리인을
선임한 법원의 결정은 큰 잘못이다.

법정관리인이 법정관리이전 사주의 이익에 "충실"하기 위해 배임행위까지
할수 밖에 없는 것은 현행 회사정리법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법정관리기업은 부채와 자본의 합계액이 순자산가액을 웃도는
상황이기 때문에 법정관리 개시와 동시에 그 차액에 해당하는 자본금, 곧
주식은 소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외국의 경우 필수적이며 우리 회사정리법에도 가능토록 돼있다.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는 기존 대주주및 그 특수 이해관계자의 주식
3분의2를 소각하는 방법으로 감자할 것을 정하여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제대로만 지켜진다면 법정관리인이 법정관리 이전 대주주의 눈치를 보기
위해 배임행위를 해야할 까닭이 없다.

이번 서주 사건이 터지자 법원은 "4명의 판사가 50여개 법정관리 기업의
회사정리 절차를 감독하다보니 어음발행 등을 일일이 통제할수 없었다"면서
"앞으로 법정관리 심사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법정관리재판부(현행 서울지법 민사50부)를 하나더
늘리거나 판사 수를 증원하는 방안으로 법정관리의 문제점이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법정관리 기업이 법에서 정한대로 전 사주에게 되돌아가지 않게 하는데
판사 수는 그렇게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