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와 호주 뉴캐슬을 오가는 현대상선소속 광탄선 "현대 스피리트호"의
3등기관사 조경주씨(22).

한국 최초의 여성 해기사로 기록될 그녀는 동료들간엔 "스쳐도 한방"
이라는 별칭으로 더잘 알려져있다.

남자 못지않은 그녀의 완력에 놀란 해양대 동기생들이 엉겹결에 붙여준
닉네임이라고 한다.

외항선 승무원하면 흔히 하얀 제복에 파이프담배를 문 마도로스를
연상하지만 그녀는 그런 화려함을 지향하지 않는다.

배가 순항할 수있도록 굉음과 스팀이 범벅이된 갑판 아래 기관실에서
엔진의 작동상태를 점검하는게 그녀에게 주어진 업무.

근무복도 물론 하얀 제복이 아니라 기름투성이 작업복이다.

아무리 봐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 홈"을 즐겨부른다는 신세대
여성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일자리다.

게다가 기관사나 항해사를 "뱃놈"으로 비하하는 사회적 편견도 엄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바다가 좋았다.

편견을 타파해 한국 최고의 기관사로 우뚝서고 싶은 도전의식도
있었다.

여학생 최초로 한국해양대학에 들어가 오늘에 이른 것.

물론 그녀에게 쏠리는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자식하나 버린 셈 치겠다"며 우선 부모들이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가족을 설득해 해양대학에 입한한 뒤엔 "감히 여자가..."하는 동기생들의
시선이 뒷통수에 꽂히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체력의 열세는 현실적인 핸디캡으로 다가섰다.

"처음엔 간단한 공구하나도 제대로 다 수 없었다.

노상 온 몸이 쑤시고 흐느적거렸다.

온통 쇳덩어리 투성이인 기관실에서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다보다
지금도 온 몸이 멍 자욱이다" 조씨는 힘을 기르기 위해 유도 수영 헬스
등 안해본 운동이 없다.

"워낙 강단이 있기도 했지만 유능한 기관사가 되기 위해 체력단련에
힘쓴 결과 파워 우먼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여자로서는 첫 진출이라 내가 잘 못하면 후배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고 기회가 박탈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그녀는 늘 긴장하며
일에 임한다.

"금녀의 성"이었던 해양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편견과의 전투"를
치러왔던 그녀다.

그래서 그런지 첫출항(10일)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녀는 그 어느때보다도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평택여종고와 해양대학 기관학과를 거쳐 올해 현대상선에 입사한 그녀의
목표는 세계최고의 기관장이 돼 컨테이너선 벌크선 자동차선 LNG선 등 모든
선형을 다 타보는 것.

태평양 한가운데서 "컴백 홈"을 불러보고 싶다는 그녀는 꿈의 실현을
다짐하며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심상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