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의 십계명인 "위기십결"을 남긴 당나라의 바둑 최고수 왕적신은
"안록산의 난"을 피해다니다가 산속에서 만난 두 여인에게서 기성의
묘수를 배웠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에는 신라의 마의태자가 단양의 도락산에 들렀다가 기성인
마고선녀와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도 있다.

설화의 형태를 빌려 전해지는 이야기이기는 해도 바둑의 스승들이
이처럼 여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연구과제가 될만하다.

실제로 1,200년전에도 여성이 바둑을 즐겼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자료가 발굴됐다.

중국 신강성에 있는 위구르박물관에는 황금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붉은
비단옷을 입고 바둑판 앞에 단정히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귀부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소장돼 있다.

바둑이 언제부터 남성들의 전유물이 돼버린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1,200년전만해도 바둑은 남성들만의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는 도락"
(난가지락)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료다.

중국의 요순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는 바둑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구당서" "삼국사기"등의 단편적 기록을 종합해보면 바둑은
삼국시대초에 들어와 상류계층에서 유행하다가 중엽부터 국민오락으로
발전됐다는 견해가 신빙할만하다.

그렇게 보면 한국바둑도 1,0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녔다.

지난1일 폐막된 한국경제신문사주최 제23기 "아마여류국수전"에서
11살의 초등학교 5년생인 조혜연양이 최연소우승기록을 세우며
아마여류국수 타이틀을 따내 바둑인들을 놀라게 했다.

미래의 꿈이 세계여류바둑 제1인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만큼 당찬
소녀다.

해방직후 3,000여명에 지나지 않던 바둑인구는 반세기만에 1,000만명
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여성아마바둑인구가 150만명에 이른다.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이다.

매년 연령층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아마여류국수전 참가자나 수상자의
경향을 보면 한국여류바둑의 잠재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실감할수
있다.

"10세에 신동, 15세에 재사, 20세가 넘으면 범인이 된다"는 일본
속담이 암시하듯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그 천재성은 자기 혼자
힘으로만 계발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양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본인이나 부모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천재를 키워내는 사회환경 역시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