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종합화학 정보기획실의 김에리나씨(여.23).그녀는 회사내에서
"가방을 든 여인"으로 통한다.

이름보다 더 특이한 이 별명은 여천공장의 한 남자직원이 붙여줬다.

청바지차림에 "007가방"을 들고 나타나는 그녀의 모습이 이채로워
그렇게 부른게 이내 별명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김에리나씨는 전국의 사업장을 돌며 사무자동화 체제구축, 프로그램지원,
전산교육, 바이러스 퇴치 등을 책임지고 있는 전산요원.

급할 때는 컴퓨터수리도 해주는 "컴퓨터 해결사"다.

말하자면 전문직 여성인 셈.

하지만 그녀가 회사내 유명인사가 된 것은 전문직 여성이라서가 아니다.

남자직원 못지않은 잦은 지방출장 때문이다.

그녀가 남자직원의 몫으로만 여겨졌던 지방출장길에 처음으로 나선 것은
입사 8개월만인 지난 94년 11월.

원래 남자직원의 몫이었으나 일손이 달려 어쩔 수없이 그녀 대신 나선게
지방출장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그후 지금까지 15개월동안 30여회 50여일을 지방 사업장에서
보냈다.

여성으로서는 한화그룹 창립이래 최장의 출장기록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회사내에서 사장 다음으로 얼굴이 널리 알져진
유명인사가 됐다.

"유명인사"가 되기까지엔 물론 많은 고난과 시련이 따랐다.

"첫 출장 때였어요.

공장에 들어서자 마자 경비아저씨가 여자가 오는데가 아니라며 막무가내로
제지하더군요.

아무리 본사에서 왔다고 말해도 통하지가 않았습니다.

정문통과에서부터 진이 빠지더라고요"

잠자리도 문제였다.

사택이 있는 공장에서는 별문제가 되지않았지만 사정이 여의치않아
시골여관에서 자는 날이면 여간 신경이 곤두서는게 아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사원이 뭘 안다고 보내냐"고 짜증을 내던 공장 사람들도 이제는
"기왕이면 김에리나를 보내달라"고 간청한다.

지난 주에도 부산지사 출장에서 돌아오자 마자 "팬"들의 요청에 따라
짐을 풀어보지도 못하고 부강공장의 임직원 전산교육장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아버지같은 직원들이 컴퓨터를 배우겠다고 기다리는데 어떻게
마다하겠느냐"며 지방출장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갈것이라고 말했다.

경인전문대에서 사무자동화를 전공한 그녀는 자신같은 전문직 여성들이
"고정관념의 벽"을 깨야 여성들의 취업문도 넓어질 수 있을 것으로 믿고
건강유지에 특히 신경을 쓴다.

그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지방출장에서 감기라도 걸려와 부모님들이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지않을까"하는 점.

어쨋튼 그녀는 공장을 포함한 전사원이 컴퓨터로 대화하고 업무보고
생활할 수 있는 진정한 "정보인"이 되도록 뒤에서 도와주는데 소임을
다한다는 생각이다.

그녀의 이름은 독실한 크리스찬인 아버지가 "에스더" "마리아" "한나"
등 성경속의 유명한 이름을 조합해 만든 작품이다.

<권영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