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의 미국 이민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작가 송상옥씨(58)가
새 소설집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 (창작과 비평사 간)을 내놓았다.

11편의 중단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이국땅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한국인들의 아픔을 과장없이 보여준다.

81년 미국으로 떠났던 그가 "흔들리는 땅"에서 체험한 "기묘한 삶"이
담겨 있다.

"문학이란 곧 사람 살아가는 얘기죠.

막연한 희망으로 이민을 꿈꾸는 사람이나 타국에서의 고단함에 지쳐
역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모았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고단한 삶에 지친 이방인의 모습을 드러낸다.

영어박사가 되고자 미국에 갔다가 발음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소시민
으로 주저앉는 유학생부부 (말과 아픔으로 시작되었다)거나 가게에
침입한 강도를 죽이고 고초를 겪다가 총에 맞는 젊은이(보복)들이다.

유부남과 미국으로 도피여행을 떠났다가 배신당한 처녀(그 가을의
끝)도 있다.

"일제시절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갔었지요.

2대에 걸친 가족사가 한국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같아 묘한
느낌을 갖곤 했죠"

표제작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은 고국에 돌아온 뒤 또다른
외로움에 직면한 주인공의 슬픈 귀거래사.

광화문 인근에 하숙을 정하고 햄버거로 헛배를 채우며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늦은 귀향자"의 애환이 절절하게 배어있다.

그토록 갈망했던 꿈의 잔영은 이제 캘리포니아 들판에 뒤덮힌 짙은
오렌지 빛깔의 파피꽃 (양귀비의 일종) 향기로 남았을뿐 그에게는 새로운
뿌리내리기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이민전 10권의 창작집을 낸 그는 "이번 작품집을 계기로 변신을
시도하겠다"며 "삶의 상처를 쓰다듬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송씨는 서라벌예대 문창과에 재학중이던 5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검은 이빨"이 입선돼 등단했으며 조선일보와 미주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7일자).